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나타난 겸손 [신앙기사 2부]

제2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나타난 겸손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요한복음에서 특히 주님의 내적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종종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하여, 자기를 이끄는 그 원동력과, 자기가 힘입어 행사하시는 그 능력에 대한 영적 자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땅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전적으로 종속적인 입장을 취했고, 오직 하나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리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주 가르치셨던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교훈의 말씀이 진리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말씀들에 귀 기울인다면, 자기를 부인하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자신의 관계를 말할 때, 온전히 자기를 부인해버렸던 것도, 바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자기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 그 동일한 정신이었다.

 

 

예수님의 본성과 삶의 방식인 겸손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 5:19).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 5:41).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요 6:38).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요 7:16).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요 7:28).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요 8:28).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 8:42).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요 8:50).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요 14:10).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요 14:24).

이러한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역사에 나타난 깊은 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구속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아들로서 마음 상태가 어떠하셨는지 보여준다.
이 성경 절들은 이미 구속을 성취하셨고 지금도 계속 교통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 본 성품과 생애의 핵심을 알려준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전부이기 위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천국에 있었을 때나, 탄생하실 때나, 모든 생애와 대속의 죽으심에 있어서나, 그분의 보좌에 앉으심에 있어서나, 그 어느 때에나 겸손 아닌 것은 없으셨다. 그리스도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형체를 입은 하나님의 겸손의 형상이시다.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이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구원하고 봉사하시기 위해 겸손과 온유로 스스로 옷 입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역사하시도록 자기의 의사와 능력은 물론 자신을 완전히 버리셨다. 예수님의 능력, 뜻, 영광, 그분의 모든 일하심과 가르침과 모든 활동까지 예수님이 반복해서 강조하신 것은, 이것은 내가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기 위하여 나 자신을 아버지께 바쳤으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만이 전부시라는 간증이셨다. 이러한 전적인 자기 부인과 절대 순종, 아버지만 의지한 그분의 생애가 완전한 평안과 기쁨의 근원인 것을 예수님은 아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 것 때문에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셨고, 그리스도를 높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겸손히 낮추셨고, 하나님이 자기 앞에 항상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처럼 사람 앞에서도 낮출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겸손은 오직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그것들을 관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자기 안에서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신 것이 그리스도의 겸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처럼 효력 있는 것은 이러한 마음과 정신과 성품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러한 성품을 우리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게 하는 비결

 

이 겸손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자기 부인을 말한다. 이런 사람의 자아 그 자체는 하나님만 모셔야 하는 하나의 빈 집으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주장하는 모든 소욕과 행위는 한순간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겸손이다. 여기서 진정한 겸손의 본질과 그 성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의 겸손이 형식적이며 보잘것없는 이유는 이 진정한 겸손의 본질과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며,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하셨는지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진정한 겸손은 어디서 생기며, 그 힘은 어디서 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아는 그 지식과, 나 자신은 진정 아무것도 아니며 무익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그 지식에서 진정한 겸손과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겸손의 삶은 예수님이 이미 실제로 보여주신 삶이며, 죄와 혈육을 죽여야 생기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삶을 말한다. 만일 우리가 이 삶의 그 표준이 너무 높아 감히 실천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더욱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자 애써야 될 것이다. 이러한 온유하고 겸손한 삶은 오직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된다.
이러한 겸손의 삶을 정말 원한다면, 먼저 매 순간 쉬지 않고 만물 속에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감추어진 섭리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 이 모든 자연과 인간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와 능력과 지극히 선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며, 통로에 불과한 것임을 증거해야 한다. 모든 덕과 은혜의 근원은, 모든 신앙과 진정한 예배는 우리가 아무 것도 스스로 가진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며, 정말 겸손히 무릎을 꿇는 데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하셨던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겸손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느끼고 깨달아 실행한 정신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온 생애에 일관된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위해서 내려온 하나님의 종이라고 느끼셨다. 이렇게 깨달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스스로 사람들의 종이 되셨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성취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단 한순간도 자기 명예를 구하거나 자신을 위한 권세를 생각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온 정신은 오직 하나님만 나타내기 위해, 자기를 하나님께 바친 삶을 실천하려는 정신으로 충만하셨다.
우리의 일상은 그 겸손으로 옷 입고 있는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 거룩한 겸손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틀림없이 우리가 아직까지 맛보지 못했던 하늘의 축복을 그 겸손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다.

 

 

예수님이 공개하신 그분의 마음

 

예수님은 그분의 마음을 모두 우리에게 공개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내게 배우라”(마 17:29). 우리는 그분의 마음과 생애가 얼마나 겸손으로 충만했었는지 알게 된다. 예수님이 겸손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펴보면, 모든 사람, 특히 제자들에게 주님이 겸손하신 것처럼 겸손하라고 부탁하신 것이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셨는지 주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라.

 

1. 예수님의 공생애 첫 교훈의 말씀은 겸손이었다.
산상보훈 설교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3,5). 예수님이 천국에 대하여 전파하신 첫 교훈의 말씀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 무엇인지 계시해 주셨다.
극히 가난한 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다. 온유한 자들,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자들이 오히려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은 겸손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겸손은 금생과 내생을 통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2. 예수님은 우리가 온유와 겸손을 항상 그분께 배우고 본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예수님은 자신이 선생인 것을 밝히셨다. 그분은 이 말씀의 참뜻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온유와 겸손은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목표였다. 그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완전한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다. 겸손은 진실로 구원의 필수 요소이다.

 

3. 제자들이 서로 다툴 때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임을 가르치셨다.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기를 원해서,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클지 말다툼했다. 제자들은 스스로 이 싸움을 해결할 수 없자 주님께로 갔다(눅 9:46, 마 18:3). 그때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누가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질문의 대답은 오직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 외에는 없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 9:48).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영광, 하늘나라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것,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바로 겸손이다.

 

4. 가장 겸손한 자가 가장 귀한 자라고 하셨다.
세베대의 두 아들이 예수님께 청탁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때에 예수님은 이런 대답을 하셨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 막 10:40). 그들은 결코 그것을 찾거나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제자들의 생각은 겸손의 잔을 받고 겸손으로 침례 받아야 했다. 예수님은 또다시 뒤이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 20:24). 이 예수님의 겸손이 바로 천국에서 오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신 표적이었다. 그러므로 이 겸손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의 영광을 측량하는 유일한 표준이 될 것이다. 가장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자이다. 천국에서 가장 귀한 자리는 가장 겸손한(낮아진) 자에게 약속된 것이다.

 

5. 높은 자리와 지위를 탐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제자들과 많은 사람에게 섬김의 겸손을 가르치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 이러한 겸손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사다리이다.
예수님이 어느 날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서 청함을 받은 손님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택하는 것을 보셨다. 그때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4).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진리이다.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자기를 낮추는 것만이 자기를 높이는 길이다.
우리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지라도 먼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참된 겸손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 예배는 무가치한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9~14).

 

6. 예수님은 겸손의 모본을 직접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다음에 말씀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예수님은 그 모든 계명과 그 생애 전체를 통해서 이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 기본 토대가 되는 정신인지 알려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마지막 만찬상 앞에서도 제자들은 역시 누가 제일 큰 자인지를 서로 말다툼했다(눅 22:24~27).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6,27). 예수님이 몸소 걸어가신 길, 우리를 위해 개척하신 그 길은 오직 겸손이다.

 

 

우리의 구원을 성취시킨 힘은 예수님의 겸손

 

우리의 구원을 성취시킨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은 오직 겸손이었다. 우리를 모든 사람의 종이 되게 하는 그 겸손인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신실한 청지기와 참된 종의 본질적인 성격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특별한 성품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지구상에 이러한 성품을 가진 신실한 종이 없지는 않다. 그들에게는 종이라는 이름은 둘도 없는 영광이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보자. “나는 청지기와 종으로 하나님께 기뻐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죄와 육신에서 해방되는 참 자유의 경험을 하는가?” “이렇게 종 되는 것이 내 신앙의 참 즐거움인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서로 종 되게 하는 겸손의 정신을 위함이다. “서로 종이 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큰 축복인 동시에, 죄와 이기심을 떠나 새롭고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 길이다. 처음에 서로 종이 되는 것이 무척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아직도 그 마음에 교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피조물의 영광이고, 그리스도의 정신이며, 천국의 기쁨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를 못살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까지라도 도와주고 섬기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쳐서, 이러한 겸손하고 순결한 데까지 처하게 된다면, 이제는 겸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한 마디 한 마디가 뼈에 사무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수고에 동참하고 깊은 영적 교제를 한다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도 지나치다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귀한 일 천한 일이 따로 없고, 아무리 천해 보여도 계속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고상하게 되는 길

 

높고 거룩하고 고상한 삶에 이르는 길을 계속 배워보자. 내려가고 내려가고, 더 낮은 데로 내려가라. 이 길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유일한 길이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며, 그분의 좌우편에 앉기 원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길이다.
높아지기를 찾지도 말고 요구하지도 말라. 모든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 다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종의 자리 외에 다른 자리는 구하지도 말라. 종의 자리를 나의 유일한 목적과 기도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채워진다. 하나님도 마음이 가난하게 비어 있고 스스로 낮아진 마음에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그분의 영광과 능력을 부어 그를 높이기도 하며 복되게도 하신다. 우리의 유일한 갈급함은 자신을 겸손케 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항상 즐겨 하시는 일이 있으시다. 그것은 겸손한 자를 찾아 높이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인자하심은 스스로 낮추는 자를 영원히 높일 것이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지극한 존귀를 얻는 길이다. 이 겸손의 정신은 하늘 왕이 친히 보여주신 신실한 정신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의 겸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 해 계시다는 표적(사인)이다. 이 겸손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유일한 길이다.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은 예수님은 지금 초청하신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나에게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마음에 충만해질 때까지 거듭 반복해서 깊이 묵상하라. 주님의 말씀과 사상과 마음에 푹 잠기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보여주신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으라.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성품을 나누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분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분을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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