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79호 매일의 말씀

열한시 279호 매일의 말씀

 

1. 예수님의 초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구주의 강림은 에덴에서 예언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처음으로 듣고 이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지체되었다. 이 약속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에녹의 시대로부터 다시 이 약속은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되어, 그의 강림에 대한 소망이 소멸하지 않게 했지만, 그는 오시지 않았다. 다니엘의 예언은 그의 강림의 시기를 계시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그 예언을 다 바로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세기가 지나갔다. 선지자들의 음성은 그쳤다. 압제자의 손이 이스라엘을 무겁게 눌렀으므로 많은 사람은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겔 12:22)는 말을 외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별들이 정해진 길을 따라 광대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은 조급하거나 지체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흑암과 연기 나는 풀무의 표상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 할 것을 보여 주셨으며 그들이 4백 년간 거기서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밝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4)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맞서서 바로의 거만스러운 제국이 총력을 기울여 싸웠지만 헛수고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출 12:41)다. 이처럼 하늘의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강림의 시간이 작정되었다. 때를 알리는 대시계(大時計)가 그 시각을 가리켰을 때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 그때 예수님께서 조물주의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시키시려고 오셨다. 그는 우리를 진토에서 건져내어 손상된 품성을 당신의 거룩하신 품성을 따라 재형성하시고 그 품성을 당신의 영광으로 아름답게 만드시기 위하여 오셨다.

 

2. 베들레헴의 교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고 있었으므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허락하신 분의 오심을 선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가의 예언은 그분의 출생지를 알려 주었고(미 5:2), 다니엘은 그분의 초림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단 9:25).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런 예언들을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메시아의 오심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실을 백성들에게 전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핑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무지는 죄스러운 태만의 결과였다.

모든 사람은 세상의 구속자를 영접하는 최초의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고대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먼 나사렛의 산골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두 사람의 피곤한 여행자는 그 마을의 좁은 길을 동쪽 끝까지 걸어가면서 밤 동안에 쉴 곳과 잘 곳을 찾았으나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열어 주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비천한 한 외양간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거기서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셨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는 증거는 보이지 않고 생명의 왕을 영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태에 놀란 천사는 그 부끄러운 소식을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그는 한 무리의 목자들이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메시아가 세상에 오실 예언을 명상하고 세상의 구속자가 오실 일을 사모하면서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에 바로 하늘의 복음을 받고자 준비된 무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주님의 사자는 나타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베들레헴의 그 놀라운 이야기에는 참으로 훌륭한 교훈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의 불신과 오만과 자부심을 진정으로 견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에게 죄스러운 무관심 때문에 시대의 징조를 분별치 못함으로 권고(眷顧)하시는 날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깨우쳐 주는 경고가 되지 않는가!

 

3. 예수님께서 탄생하였을 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마 2:1,2)

영광의 왕께서 인성을 취하시려고 자신을 낮추셨다. 그분께서 하늘의 거민들에게 경배받으실 때에 하늘 궁정에서 그분의 영광을 목격했던 천사들은 그토록 심한 굴욕을 당하시는 거룩한 사령관을 보고 실망하였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천사들은 아기 구세주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통보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동방의 박사들을 택하셨다. 이 박사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비천한 목자들에게 포고한 하늘 천사들을 두르고 있던 빛으로 환하게 된 하늘을 보았었다.

이 빛은 멀리 보이는 빛나는 천사들의 무리였는데 그것은 마치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그들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크고 밝은 한 별이 한 징조로서 하늘에 여느 때와는 달리 나타난 것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박사들은 그 별이 그들을 인도한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행로를 잡았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자 그 별은 어두움에 가려져 더 이상 그들을 인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이 중대한 일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루살렘 근처에서 물어보았다. 박사들은 그곳에 메시아의 강림에 관한 주제에 특별한 관심이 없음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의 큰 사건을 기대하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데 대하여 놀랐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은 세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하여 그랬던 것처럼 예언의 빛 보기를 싫어하며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증거들 받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메시아가 예루살렘에서 덧없으나 의기양양한 통치를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전향하면서 교회가 덧없는 번영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들도 덧없는 황금시대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4. 재림의 소망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그리스도의 재림은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들의 희망이 되어 왔다. 구주께서 감람산에서 이별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재림의 약속은 제자들의 미래를 밝혀 주었고, 어떤 슬픔도 빼앗아 갈 수 없고 어떤 시련도 흐리게 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었다. 박해와 시련 중에서도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이 “복된 소망”이 되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서 주님의 재림 보기를 희망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므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그들의 스승인 바울은 구주의 재림 시에 있을 부활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옥중에서, 화형주에서, 교수대에서, 성도들과 순교자들이 진리를 증거한 곳에서, 그들의 믿음과 소망의 말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 중의 어떤 그리스도인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였고, 따라서 재림 시에 자기들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였으므로,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것을 초월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활할 것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무덤에 들어갔다. 그들은 “주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사”, “거룩한 나라에 인도하여 들이실 때”를 바라보았다. 왈덴스 교도들은 똑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위클리프는 구주의 나타나심을 교회의 희망으로 바라고 사모하였다.

험준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밧모섬에 귀양을 간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는 그 말을 듣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말은 오랫동안 순례 생활을 해온 교회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5. 성경 기록의 요지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성경에 계시된 가장 엄숙하고 영광스러운 진리 가운데 하나는 구원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이다. 오랫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방황하도록 버려졌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버림받은 백성들을 본향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귀중하고 기쁨에 넘치는 소망을 주고 있다. 재림의 교리는 바로 성경의 근본적 주제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슬픈 발걸음을 돌이킨 후부터 믿음의 자녀들은 파괴자의 세력을 깨뜨리고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회복시켜 줄 언약의 구주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왔다. 옛날의 성도들도 그들의 희망의 성취로서 영광의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왔다. 에덴 낙원에 거하던 시조로부터 불과 7대 자손에 해당하며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오랜 후에 있을 구주의 재림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으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유 14,15)라고 말하였다. 또 족장 욥은 그가 고통을 당하던 밤에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 19:25~27).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그대에게 지혜를 주사 그대가 영원한 것을 분별하기를 바란다. 진리의 빛으로 그대의 많은 잘못을 분별하되 있는 그대로 발견하여 그것들을 제거하는 데 꼭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악하고 쓴 열매 대신에 영생의 귀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란다.

그대의 비천하고 교만하고 의로운 체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낮추어라. 낮추어라. 매우 낮추어라. 그분의 발 앞에 자신의 죄로 인해 깨어져라. 준비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그분께서 살아 계시니 나도 살리라는 말을 진정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쉬지 말고 노력하라.

그대가 하늘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하늘을 얻는다면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탄원하노니 이 점에서 실수하지 말라. 영원한 이익이 여기 달려 있다.

 

6. 개혁자들의 믿음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루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나는 심판의 날이 앞으로 3백 년이 못 되어서 올 것으로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악한 세상을 더 이상 오래 참지 않으실 것이며, 참을 수도 없으실 것이다.” “이 가증한 나라가 전복될 큰 날이 다가오고 있다.”

멜란히톤은 “이 낡은 세상은 그 끝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시는 날을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으로 주저하지 말고 고대하라”고 권면하고, “모든 충실한 가족들은 그날을 고대할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그 큰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볼 때까지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명상하기를 주린 것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녹스는 말하였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하늘로 가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께서 돌아오시되 속히 돌아오실 것을 믿는다.”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린 리들리(Ridley)와 래티머(Latimer)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기다렸다. 리들리는 기록하였다. “나는 그 사실을 믿고 있으므로 말한다. 세상은 확실히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 요한처럼 충심으로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향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박스터(Baxter)는 말하였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생각은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그 복된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성도들의 특성이요 믿음이다.” “부활할 때 멸망되어야 할 최후의 원수가 사망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사망이 완전히 정복당하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을 참으로 열렬하게 바라고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날은 마땅히 모든 신자가 사모하고 바라고 기다려야 할 날이다. 왜냐하면 그날은 그들의 구속을 위한 모든 사업과 그들의 영혼의 모든 소원과 노력이 성취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 주여, 그 복된 날이 속히 이르게 하소서.” 그 말은 사도 시대의 교회와 광야의 교회와 종교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7. 역사의 열쇠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사 21:11,12)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에 대한 이해는 흘러온 모든 역사를 설명해 주는 열쇠가 되며, 장래의 모든 교훈을 가르쳐 주는 관건(關鍵)이 된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사 21:12)는 참된 파수꾼의 음성은 지금 계속해서 들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호와의 큰 날을 위하여 예비해야 하므로 분명한 나팔소리를 내야 한다.

예언의 진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예언의 진리들을 연구할 때 그 진리들은 실제적인 신앙의 진리에서 아름다운 한 덩어리를 형태로 이룬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설교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재림하심을 위하여 기다리고, 일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 증거 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의 소망이다. 이 소망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활동, 그리고 우리의 모든 교제와 상호 관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인자의 재림에 대한 문제는 사람들 앞에 항상 제시해야 할 놀라운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 문제야말로 우리 설교에서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된다. 영원한 실재가 정신적 안목에 언제나 머물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세상에 대한 매력은 사실 그대로 무익한 허영으로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허영, 영광, 재물, 명예, 쾌락 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복된 소망을 위하여 기다리고 바라며 기도하고 있는 순례자들이요 나그네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실제 생활에 적응한다면 얼마나 활기찬 행동이 이 믿음과 소망을 고무시킬 것인가! 또한 얼마나 서로 열렬히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화된 생애를 살려고 얼마나 신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또한 영원한 보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와 세상 사람들과의 사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계선을 얼마나 확실히 그어 놓았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진리는 모든 사람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8. 또 한 번의 실망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종들까지도 사람들의 견해와 유전과 거짓 교훈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밝혀주신 큰 사건들을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구주께서 세상에 계실 당시의 제자들까지라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메시아께서 이 세상의 임금으로 오시면 이스라엘 나라가 온 세계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받으실 고난과 죽음을 예언한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나면서부터 그 마음이 세상 나라의 영광에 고착되어 있었으므로 예언의 자세한 내용과 그리스도의 말씀까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천국 복음”을 전파한 제자들의 경험은 그분의 재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훌륭한 비교가 된다.

초대의 제자들처럼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그들 자신이 전하는 그 복음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교회 안에 형성된 오류들 때문에 그들은 예언 가운데 있는 중요한 점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하라고 그들에게 맡기신 복음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그 의미를 오해함으로 스스로 실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초기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련의 시간이 이해할 수 없는 듯이 보였을지라도 후에 가서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었다. 그들이 만일 “주께서 나중에 어떻게 행하신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시련이 저들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은 확실하게 성취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며,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라고 한 성경의 말씀을 귀중한 경험을 통하여 배우게 될 것이다.

 

9. 비천한 사람들이 복음을 전함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이 복음은 “영원한 복음”의 한 부분으로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의 전파는 천사에게 위임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위임된 것이다. 거룩한 천사들은 복음 전파의 사업을 지도할 책임을 맡아 인류의 구원을 위한 큰 운동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종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과 그분의 말씀의 교훈을 순종한 충성된 종들은 이 경고를 세상에 전파하여야 했다. 그들은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이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벧후 1:19) 확실한 예언에 유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감추인 모든 보화보다도 더욱 값진 것으로 찾아 구하고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잠 3:14)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위대한 일들을 보이셨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재림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를 전하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은 소위 학문적인 면에서 신학자들은 아니었다. 만일 신학자들이 열렬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충실한 파수꾼들이었다면, 그들은 어두움의 시기를 반드시 깨달았을 것이었다. 예언은 그들에게 바야흐로 일어날 사건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위치에 서지 않았음으로 복음은 더욱 비천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요 12:3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거절하거나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빛을 찾는 일을 등한히 하는 자는 암흑 가운데 버려진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말씀하신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고 이미 주어진 빛을 열심히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다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를 인도해 줄 하늘의 광휘를 지닌 어떤 별들이 보냄을 입을 것이다.

 

10. 진리가 승리할 것임

“천사가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 10:5,6)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가까웠다고 선포하는 계시록 14장의 복음은 마지막 때에 주어진 것이며 계시록 10장의 천사는 한 발로는 바다를 밟고 있고 또 다른 발로는 땅을 밟고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복음이 먼 나라에 전파될 것과 바다를 횡단하고 바다의 섬들이 우리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의 복음의 선포를 듣게 될 것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 10:5,6) 이 복음은 예언적 기간의 끝을 말하고 있다. 1844년에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대했던 자들의 실망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그처럼 간절히 바라던 자들에게 참으로 쓰디쓴 것이었다. 이 실망을 반드시 겪어야 하고 믿음의 생각들이 나타나도록 하신 것은 주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으신 단 한 점의 구름도 교회를 그늘 지우지 않았으며 주님께서 예시(豫視)하지 못하신, 하나님의 사업을 대항하는 단 하나의 반대 세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그대로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흑암 가운데 버려두시지 않으셨으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적인 선언들을 상세히 진술하셨고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세계 역사상 지정된 장소에서 그 섭리를 베푸셨으며 당신의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감동하여 예언하게 하신 일들을 그대로 성취하셨다. 당신의 모든 목적은 성취될 것이며 확증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당신의 보좌에 연결되어 있어 인간 대리자들과 결합한 사탄의 어떠한 작용도 율법을 없앨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감으로 주신 것이며 보호를 받고 있다. 진리는 생명을 유지할 것이며 때때로 무색하게 보일 때가 있을지라도 끝끝내 성공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이 품성 가운데 예증된 것이다. 율법에 대항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모든 기만술, 거짓된 것을 옹호하기 위한 모든 계략, 사탄의 작용에 의하여 꾸며진 모든 오류는 결과적으로 영원한 패배를 당할 것이며 진리의 대승리는 중천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을 것이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말 4:2)처럼 빛을 발할 것이며 온 세상은 당신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11. 우리 주님의 돌아오심을 촉진함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롬 9:28)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예언은 다시 성취될 것이다. 그 시대의 차고 넘치던 그와 똑같은 죄악을 현대에서 본다. 복음 전파에 관한 예언도 그와 같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바울의 기록에는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골 1:23) 전파된 바라고 선언하였다. 그와 같이 인자가 오시기 전에 이제 영원한 복음이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14) 전파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행 17:31)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이 언제 이르게 될는지 우리에게 알리신다. 그분은 온 세계가 다 회개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 주님의 강림을 촉진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시는 날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날을 재촉해야 한다 (벧후 3:12 상단 참조).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님께서 명하신 바와 같이 맡겨진 사업을 이루었다면 온 세계는 벌써 경고를 받았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다.

죄악과 슬픔의 세상에 우리를 이처럼 오랫동안 머물게 한 것은 주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과 세속주의와 미지근한 상태와 분쟁이다.

복종하지 않으므로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될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들 자신의 잘못된 행동 노선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므로 죄에다 죄를 첨가하지 말아야 한다.

 

12. 셋째 천사의 마지막 경고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셋째 천사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는 천사는 그 영광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한다. 온 세계적 범위의 사업이 비상한 능력으로 성취될 것이 여기에 예언되어 있다. 1840년에서 1844년까지의 재림운동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영광스럽게 나타났다. 첫째 천사의 복음은 세계의 모든 선교지에서 증거되었다. 그리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어떤 곳에서 있었던 것보다 가장 큰 종교적 각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셋째 천사의 마지막 경고 아래 이루어질 큰 운동은 그것보다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위대한 복음의 사업은 그 시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 못지않은 큰 능력이 나타남으로 마쳐지게 될 것이다. 복음 사업의 시초에 이른 비가 내림으로 성취된 예언들은 그 사업의 종말에 늦은 비가 내림으로 다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한 헌신으로 빛나고 밝은 표정을 얼굴에 짓고, 하늘에서 온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분주히 왕래할 것이다. 온 세상은 무수한 음성으로 경고를 받을 것이다. 이적들이 일어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며, 표적과 기사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따를 것이다. 사탄도 또한 거짓 기사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까지 할 것이다(계 13:13 참조). 이리하여 세상의 거민들은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취하게 될 것이다.

선교인들에 의하여 전달된 인쇄물들은 감화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감동을 한 많은 사람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순종하는 일에 장애를 받아 왔다. 이제는 밝은 광선이 각 곳으로 뚫고 들어가서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직한 자녀들은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줄을 끊어 버리게 된다. 이제는 혈연관계, 교회 관계가 그들을 붙들어둘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해진다. 진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귀중하다. 여러 기관이 진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결속하였을지라도 많은 사람이 주님 편에 서게 된다.

 

13. 주께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의의 시대를 도래케 할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기자들이 가장 장엄하고 숭고한 말로써 그 사건을 표현하도록 감동을 주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이의 권능과 위엄을 노래하였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함이여…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6:11,13).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떠나가시고자 하셨을 때, 그들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보증하심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그들을 위로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감람산 위에 머물러 있던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거듭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라”(살전 4:16)고 증언하였다. 밧모섬의 선지자 요한은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라고 말하였다.

그분의 재림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행 3:21)의 영광이 된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온 악의 통치가 그때 깨어질 것이다. 그리고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14. 엘리야의 예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하는 자들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엘리야의 심령으로 왔던 것처럼 충성스러운 엘리야로 대표되어 있다.

침례 요한의 사업과 말세에 사람들을 그들의 무관심에서 일깨우기 위해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갖추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사업은 많은 관점에서 동일하다. 그 사업은 이 시대 안에 성취되어야 할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두 번째로 의롭게 오셔야 한다.

요한은 친구들과 사치스러운 생활로부터 자신을 분리했다. 단순한 의복, 약대 털로 짠 옷은 전반적으로 유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사치와 과시에 대해서 변함없는 견책이 되었다. 메뚜기와 석청, 순수한 채식으로 이루어진 그의 식생활은 도처에 편만해 있는 식욕의 방종과 탐욕에 대해 견책이 되었다. 개혁의 대주제가 뒤흔들어서 대중의 마음을 휘저어야 한다. 범사에 절제는 복음과 관련을 맺어야 하며, 의복과 다른 것들에 대한 우상숭배와 탐욕과 사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끄시고 축복하시는 의인들에게 필요한 극기, 겸손, 절제는 이 타락한 시대에 사는 이들의 사치하고 건강을 파괴하는 습관들과 대조되어 백성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건강 개혁이 신체와 손의 관계처럼 셋째 천사의 복음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셨다.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한 백성을 준비시킬 때 십계명으로 그들의 주의를 환기한 것과 같이 우리도 분명한 소리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음이니” 선지자 엘리야와 침례 요한의 특징이었던 열성을 가지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15. 예수님을 중심으로 높임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말세의 위기가 우리에게 임하였는데, 우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그들이 처한 위험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예언이 계시하는 엄숙한 장면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 백성이 절반만이라도 깨어 있다면, 만일 그들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사건들의 임박함을 깨닫기만 한다면, 교회 안에는 신앙 부흥이 일어나 더욱 많은 사람이 복음을 믿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허비할 시간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계할 자들인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신다. 새로운 원칙들을 발전시키고, 명쾌한 진리 안으로 가까이 행하라. 그것은 양날 선 검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한 나머지 논쟁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조용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니엘서가 말하게 하라. 요한계시록이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그러나 주제의 어떤 면을 제시할지라도 예수님을 모든 소망의 중심,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계 22:16)로서 높이도록 하라.

좀 더 깊게 파라.

우리는 진리를 탐구할 때, 충분할 만큼 깊이 있게 파지 않는다. 이 시대에 주신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은 그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말하도록 요청받는 곳에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왕과 방백과 관원과 지상의 위대한 인물들 앞에 세움을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회심한 남녀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지상의 위대한 인물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도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한순간에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실 수 있으시다. 우주는 지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쟁투를 지켜보고 있다.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할 것을 알 기회를 모든 사람을 위해 마련하셨다. 이 기회를 붙잡는 사람을 보게 되기를 천사들은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어떤 메시지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시될 때, 그것을 반대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으로 가야 하며, 그것을 율법과 증거의 말씀으로 비교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기를 원한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를 우리에게 쏟으시기를 갈망하신다.

 

16. 밭은 세상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마 28:19)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곧 그들을 사로잡을 강력한 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이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에 실망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활동하고, 스스로 사역을 붙들고, 그들 자신을 진정으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하게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 앞에 지나가는 장면들은 우리를 각성시켜, 진리를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그 진리를 새기도록 강요하기에 충분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세상의 곡식은 거의 익어 있다.

우주 만물은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세 천사의 복음 가운데 나타난 진리를 전하는 일에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라고 호소한다. 우리가 듣고 보는 것이 다 우리의 임무를 자각시켜 준다. 사탄의 대리자들의 활동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자기의 몫을 수행하라고 부르고 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원수의 세력을 정복하는 데는 빈틈없고 계속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가만히 앉아서 초조하게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일어나 활동하는 것이다.

아무라도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지 말게 하라. 게으르고 무력한 상태에서는 누구라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지상 봉사 기간에 이루신 업적을 생각해 보라. 그분은 얼마나 열심 있고, 꾸준하게 노력하셨는가! 그분께서는 아무것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회피하려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가?

영혼 구원 사업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실 부분을 다 하셨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의 활동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모든 나라에 진리의 빛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신다. 누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겠는가?

하늘의 천사들은 인간의 대리자들, 곧 성도들이 마쳐야 할 큰 사역에 저들과 함께 협력하여 주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천사들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성화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서 각각 이 사업에 뛰어 들어가도 좋을 만큼 그 밭은 넓고 그 계획은 방대한 것이다.

 

17. 땅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

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거의 우상에게 바쳐진 수많은 도시에 다가오는 멸망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지않아 아주 고통스러운 환란, 곧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꺼지지 않을 환란이 열국들 사이에 일어날 것이다. 이전 어느 때보다 우리는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만유를 통치하는 나라를 마련해 놓으신 분을 섬기며 서로 밀접하게 연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저버리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데 달려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내리고 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 그리고 화재와 홍수로 인한 파괴는 종말까지 증가하게 될 환란의 때가 매우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준다. 우리는 흘려버릴 시간이 없다. 세상은 전쟁의 정신으로 분기되어 있다. 다니엘 11장의 예언은 거의 마지막 성취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우리를 종말로 점점 가까이 접근시킨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가?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는가? 우리가 날마다 접촉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과 인도가 필요하다. 저들은 정확한 장소에 박힌 못과 같이 성령께서 주시는 적절한 한마디의 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일 이 중의 어떤 영혼들은 우리가 다시는 접촉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동료 나그네들에게 끼치는 우리의 감화는 어떠한가?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천사들이 네 바람을 잡고 있을 동안에 우리는 온 역량을 다하여 일하여야 한다. 우리는 지체 말고 이 시대에 알아야 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늘 우주와 이 퇴폐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앙은 곧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시는 신앙이요 그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영혼들이 저울에 달려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으면 사탄의 압제의 노예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 앞에 제시된 소망을 붙잡을 특권을 가져야 하는데, 전하는 자가 없다면 어떻게 저들이 들을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도덕적 쇄신과 품성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현재 만연되고 있고 또 복음을 방해한다고 생각이 되는 논리적인 오류로 말미암아 멸망해 가는 영혼들이 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이제 온전히 헌신할 자는 과연 누구인가?

 

18. 더욱 훌륭하고 고상한 길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사 1:16,17)

무지와 쾌락을 사랑함과 죄 된 습관과 부패하게 하는 심령과 육체와 정신이 세상을 도덕적 문둥병으로 충만하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죄에 빠져 있다. 많은 사람은 곤경에 처하여 있다. 저들은 고난과 궁핍과 불신과 실망에 마음이 눌려있다. 각종 질병은 저들의 육신과 영혼을 다 함께 괴롭히고 있다. 저들은 저희의 곤란 중에서 위안을 찾고자 갈망한다. 그러나 사탄은 멸망과 사망으로 인도하는 정욕과 오락에서 이 안위를 찾도록 하기 위하여 저들에게 가까이 간다. 사탄은 입술에서 재가 되고야 말 소돔의 사과를 저들에게 제공한다.

세상 형편의 두려운 양상이 내 앞에 제시되었다. 각처에 부도덕이 충만해 있다. 방탕은 이 시대의 특별한 죄이다. 부도덕이 지금과 같이 대담하게 그 추한 머리를 쳐든 적은 결코 없었다. 이 많은 죄악은 불신자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남녀가 죄를 짓고 있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고대한다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까지도 사탄 자신이 그런 것처럼 이 사건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아니하다. 그들은 모든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욕을 만족시켜 왔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부정하여지고 상상력이 부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생각을 돌이켜 순결하고 거룩한 사물을 묵상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의 흐름을 돌이켜서 쏟아지는 물을 폭포수 위로 올려보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욕을 억제하고 원칙의 지배를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음란, 퇴폐, 간음, 범죄, 살인 등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받기를 거절하는 자들이 행하는 시대적인 현상이라면 하나님과 천사들과 밀접한 연합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무리가 더 훌륭하고 고상한 길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들이 정절과 미덕으로써 야수적인 정욕의 지배를 받는 그 무리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19. 큰 소리로 외칠 때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롬 13:11)

종말은 마치 밤중에 도적이 소리 없이 접근하듯이 몰래 불식간에 우리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우리가 남들처럼 더 이상 졸지 말고 경성하여 분별 있게 되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란다. 진리는 미구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며, 지금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진리와 함께 승리할 것이다. 시간은 촉박하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후 오순절 날에 일어났던 회심자의 수와 맞먹는 회심자들이 하루에 일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의 초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저들은 시험과 시련을 받아 왔으나 산더미 같은 장애물들이 저들 앞에 불쑥 나타나서 저들이 전진하는 행군을 막아 버리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믿음과 인내와 용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은 이 방해물들을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빛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거의 부지중에 곧고 좁은 길에 장벽들이 세워졌으며, 거치는 돌들이 통로에 놓였는데, 그런 것들은 치워지게 될 것이다. 거짓 목자들이 저들의 양 떼 주위를 둘러놓은 장애물들은 없는 것처럼 될 것이다. 수천 명이 빛 가운데로 나와 빛을 전하기 위해서 일할 것이다.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이 인간 대리자들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용기를 얻은 교회는 그 성화된 힘을 이 투쟁에 모두 바쳐 일어나 빛을 비출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되고, 잃었던 진주들은 다시 찾게 된다.

힘센 음성으로 외치는 동안 교회는 구원의 지식을 매우 풍부하게 전하므로 빛이 모든 도시와 마을에 전파될 것이다. 이 세상은 구원의 지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는 열렬하고 활동적인 기구들을 풍성한 성공으로 관 씌우실 것이므로 이 시대의 진리의 빛은 어느 곳에서나 번쩍일 것이다.

 

20. 충실한 자들은 실패하지 않을 것임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우리는 지금 성경을 읽고 연구함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불법의 세력을 대항하도록 표준을 높여주실 것이다.

처음에 가졌던 우리의 신뢰심을 끝까지 굳게 붙잡고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핍박이 없을 때는 진리 위에 확고하게 서 있는 듯이 보이는 자들이 일단 핍박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에게서 떠나게 될 것이다. 위기가 이를 때에 저들은 과거에 한때 저희 정신을 지배하여 온 그럴듯한 추리력 속에 어떤 세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탄은 온갖 종류의 인간을 상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올무를 준비해 놓았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할 때 교회는 불같은 시련으로 체질을 당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비율에 속하는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딤전 4:1)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때 저들은 힘을 얻는 대신에 참 포도나무의 살아 있는 가지가 아님을 스스로 증거할 것이며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므로 농부는 저들을 밖에 내다 버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할 때 참으로 순종하는 의로운 자에게 어떠한 결과가 이를 것인가! 저들 역시도 악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말 것인가! 허다한 많은 사람이 스스로 흑암의 왕의 깃발 아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의 충성심이 흔들리게 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단 한 영혼도 실패하거나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이 세상의 어떤 주권자보다도 높으신 권위자에게 저들의 순종을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경멸이 여길 때 많은 사람은 진리를 억압하고 진리에 대한 경외심을 잃게 되지만 충성된 자들은 보다 열렬한 정신을 가지고 고상한 진리를 위로 높이 쳐들 것이다. 우리는 제멋대로 가도록 방치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갈 길을 지시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주님의 권고를 구해야 하며 우리의 뜻을 주님의 뜻에 맡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21.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노력함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눅 15:4)

한 영혼의 회개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인도된 한 영혼은 그의 주변에 하늘의 빛을 퍼뜨려 도덕적 암흑을 뚫고 다른 영혼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아흔아홉 양을 떠나가셨다면, 우리가 그보다 적게 활동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그분께서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거룩한 의무를 저버리고 하나님께 욕 돌리는 일이 아닌가?

지구의 방방곡곡에 알려 주고 경고해 주라. 주님의 날이 가깝고 심히 촉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라. 경고받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라. 우리는 오류에 빠져 있는 가련한 영혼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한 진리를 받았으므로 그 진리를 그들에게 나누어 줄 책임이 있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끝이 가까웠다.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왕래하는 길은 미구에 좌우편에 있는 위험으로 막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사자들의 길을 방해하기 위하여 온갖 것이 가로놓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을 정면으로 똑바로 주시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신속히 공격적으로 전진해야 한다. 흑암의 권세들은 땅에서 맹렬한 힘으로 활동하고 있고 사탄은 마치 먹이를 잡은 이리처럼 오늘날 잠자고 있는 자들을 사로잡기 위하여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전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전해야 할 경고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구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빛의 길에서 지켜 주시고, 우리의 눈을 우리의 지도자 되시는 예수님께 고정해 주시고, 승리를 얻기 위하여 꾸준하고 인내력 있게 전진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22. 다니엘서와 계시록을 연구하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니라”(계 1:3)

교회들을 일깨우게 될 한 가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그 빛을 세계에 비추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소책자로 인쇄하여 필요한 설명을 함께 담아 온 세상에 배포해야 한다. 우리는 그 빛을 분명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진리를 끌어낼 것이다. 그들은 억제할 수 없는 행동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입술은 열려서 인간 지성에 감추어져 왔던 신비들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크고 엄숙한 사건들이 벌어지려는 때에 서 있다. 수많은 예언이 신속히 연이어서 성취될 것이다. 모든 세력이 작용하려고 한다.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옛 쟁투는 새롭게 불타오를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방으로 위기에 둘러싸일 것이다. 격렬함이 인간 가족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다니엘과 관련지어 연구하라. 왜냐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신앙적 이점을 총동원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한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오직 그분께서 주실 수 있는 지식의 더욱 큰 길이와 너비와 깊이와 높이를 간구하는 이들에게 계시된 진리들을 천사들은 살펴보기를 원한다.

이 세상 역사의 종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말세와 관련된 예언을 특별히 연구해야 한다. 신약의 마지막 책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진리로 가득 차 있다. 사탄이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지 않는 어떤 구실에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종 요한을 통하여 말세에 벌어질 일을 여기에 선포해 놓으셨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

 

23. 참지 못함과 박해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으면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키리라”(요 15:20)

사탄이 존재하고 그리스도교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한 여러 가지 형태의 박해가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원리이다. 암흑의 군대와 대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악한 천사들은 그들의 손에 들어온 자들을 하나님의 종의 감화로 빼앗길 때 놀라서 그를 공격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의 모범으로 견책받은 악인들은 악한 천사들과 연합하여 매혹적인 시험으로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때는 압제적 권력을 써서 양심을 강요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간의 중보자로 하늘 성소에 계시는 동안 성령의 제어하시는 능력이 통치자들과 백성들에게 미치게 된다. 성령의 능력은 여전히 나라의 법률들을 어느 정도 통제한다. 만일 이 법률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통치자 중 많은 사람이 사탄의 대리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국가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당신의 대리자들을 가지고 계신다. 원수는 자기의 종들을 충동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방해할 조처를 취하도록 제안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가들은 거룩한 천사들의 감화를 받아 단호한 논증으로 그런 제의에 반대한다. 이처럼 불과 소수의 사람이 강력한 악의 세력을 제지할 것이다. 진리를 대적하는 원수의 반대는 셋째 천사의 복음이 그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제지될 것이다. 마지막 경고가 주어질 때 주님께서 오늘날 사용하고 계시는 지도자들의 주의가 그 복음에 집중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고 환난의 때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설 것이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17,21).

위대한 복음의 사업은 그 시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 못지않은 큰 능력이 나타남으로 마쳐지게 될 것이다.

 

24. 교회는 무너지지 않을 것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용과 그의 천사들의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간주하며 배도한 교회들을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여기에 사탄의 최상권을 반대하는 적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만일 그들을 세상에서 없앨 수 있다면 그는 완전히 승리할 것이다. 그가 이방 나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도록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그는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기 위해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선동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에 있고, 유일한 방패는 기도가 될 것이다.

에스더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겪었던 쓰라린 경험은 그 시대에만 적용되는 경험이 아니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의 종말까지 각 시대를 내려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오늘날 지상에 사는 몇몇 사람들은 이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탄의 분노는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에 따라 증가할 것이며 기만하고 멸망시키는 그의 사업은 환란의 때에 절정을 이룰 것이다.

사탄은 속이기 위해서 그의 이적을 행할 것이며, 그의 이적을 최고로 높일 것이다. 교회는 금방 쓰러질 듯이 보이겠지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시온의 죄인들이 키질을 당하여 밖으로 나가고 겨가 귀중한 곡식에서 분리될 때까지 남아 있다. 이것은 무서운 시련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꼭 일어나야 한다.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하는 말로 승리해 온 사람들 외에는 입에 궤사가 없고, 점도 흠도 없이 충성되고 진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부드러운 염려로 당신의 자녀들을 생각하시며, 기억 책을 펴놓으시고, 당신께서 돌보시는 자녀들을 기억하고 계신다.

 

25. 거짓 신앙부흥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지 아니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2,5)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주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 시대 이래 일찍이 목격하지 못한 근본적인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그분의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대신에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러한 교회들에서 분리되어 나올 것이다. 목사들과 신자들을 막론한 많은 사람이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키고자 이 시대에 전파되고 있는 큰 진리를 즐거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원수는 이 일을 방해하려고 이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가짜 운동을 꾸며 냄으로써 이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기만의 세력 아래 모이는 교회들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내린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적 큰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도록 나타낼 것이다. 많은 사람은 실상은 전혀 다른 영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놀랍게 역사하고 계신다고 기뻐할 것이다. 이처럼 사탄은 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기의 세력을 모든 그리스도교계에 확장하기에 진력할 것이다.

과거 반세기 동안에 일어난 신앙 부흥의 대부분에는 다소간 그와 같은 영향이 활동해 왔던바 장래에는 더욱 광범위한 운동들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진리와 허위가 혼합된 감정적 흥분이 있으며 그것은 오도되기 쉽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속임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보면 그런 운동의 내용을 분별하기가 절대 어렵지 않다. 무릇 사람이 성경의 증거를 등한히 하고, 극기하고 세속을 버리도록 요구하는 분명하고 심령을 살피게 하는 진리에서 돌아설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법칙에 의하면 이런 종류의 운동이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이 분명한 것이다.

 

26. 외람되고 부주의하게 지체시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견해를 비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행동과 말로써 또는 마음속으로 주의 오심이 지체되리라고 선언한다. 그는 주께서 빨리 오시리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의 영향으로 사람들을 외람되게 하고 부주의하게 하며 지체하도록 한다. 그들은 세속적인 무감각 속에 굳어져 있다. 세상 정욕과 부패한 사상이 저희 심령을 점령하고 있다. 악한 종이 주객과 같이 먹고 마시며 향락을 추구하는 일에 세상과 연합하고 있다. 그는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리며 저희 주님께 충성스러운 자들을 비난하며 정죄한다. 그는 세상과 섞인다. 범죄에 있어서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끼리 자란다. 이것은 무서운 연합이다. 그는 세상과 같이 함정에 빠져 있다.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그리스도의 재림은 거짓 교사들에게 불시에 이를 것이다. 그들은 “평화와 안전”을 말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이전의 제사장들과 교사들처럼 그들은 교회가 세속적 번영과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를 이 일의 전조인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영감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리”(살전 5:3)라.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날은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주의 날은 그들에게 노리는 도둑처럼 올 것이다.

방탕함과 불경건한 향락으로 가득 찬 세상은 잠들어 있으며 육적인 안전에 마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의 오심이 먼 훗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경고를 비웃는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고 거만하게 자랑한다(벧후 3:4; 사 56:12). 우리는 향락을 사랑하는 데 더 깊이 빠져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계 16:15)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조롱하면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고 묻는 바로 그때 징조는 성취되는 중이다. 그들이 “평화와 안전”을 부르짖을 때 홀연히 멸망이 이른다. 진리를 경멸하고 거절하는 자가 뻔뻔스럽게 될 때, 여러 가지 영리적 사업에 있어서 원칙을 무시하고 일과를 수행할 때, 학생이 그의 성경은 연구하지 않고 각 방면의 지식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도적과 같이 임하신다.

 

27. 쟁취해야 할 하늘나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6)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엄숙하고 중대하다. 하나님의 영은 점진적으로,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지상에서 물러가고 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의 상태는 환란의 때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간신문들은 가까운 장래에 있을 무서운 투쟁을 알려주는 시사로 충만하다. 대담한 강도 사건이 빈번히 일어난다. 동맹 파업은 예사가 되었다. 절도와 살인이 도처에서 범해진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남녀들과 어린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사람들은 부도덕에 정신을 빼앗겼고, 온갖 종류의 악행이 성행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흥분 상태에 있다. 때의 징조는 불길하다. 다가오는 사건들은 그 앞에 그늘을 드리운다. 하나님의 성령은 세상에서 떠나고 있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태풍, 지진, 화재, 홍수 그리고 온갖 부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누가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어느 곳에 안전이 있는가? 인생에게나 이 세상에 있어서 아무 곳에도 안전의 보증은 없다.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깃발 아래로 신속하게 정렬하고 있다. 그들은 들뜬 기분으로 그 지도자들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바라보며 일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첫 대 반역자가 지도하는 대열로 전락(轉落)하고 있다. 지옥을 피하고 하늘을 얻어야 한다고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드물다.

위기는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비취며 여전히 궤도를 따라 돌며 하늘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다. 상인들은 여전히 사고팔고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 밀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전히 극장과 경마장과 도박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고조의 흥분이 편만해 있는 반면 은혜의 시간은 속히 마쳐지려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려고 한다.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안다. 사탄은 은혜의 때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현혹하고, 마음을 사로잡아 도취시키려고 그의 온 힘을 기울여 일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리 주의 경고의 말씀이 감람산으로부터 수 세기를 통하여 엄숙하게 우리에게 전하여 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28 깨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복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눅12:27)

항상 하나님께서는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하셨다. 각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중에 믿음으로 행한 자들은 불순종하고 불신하는 자들에게 내린 심판을 면하였다. 노아에게 “너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는 말이 전해졌다. 노아는 순종하여 구원을 얻었다. 롯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는 말씀이 임하였다(창 7:1; 19:14). 롯은 자신을 하늘의 사자의 보호에 맡겨 구원을 얻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다가오는 멸망의 징조를 바라보고 그 도성을 피한 자들은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같이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에 임할 멸망에 대한 경고가 주어진 바 되었다. 따라서 경고에 주의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7). 주의 오심을 바라는 자들은 한가하게 기다리고 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게 하며 죄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하게 한다. 이것은 주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를 거절하는 큰 죄에서 그들을 일깨워 준다.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저희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있다. 깨어 기다리는 한편 열심히 일한다. 주께서 문 앞에 이르신 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을 내어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거룩한 지혜자들과 협력한다. 이들은 주의 식구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눅 12:42) 신실하고 지혜 있는 종들이다. 그들은 오늘날을 위하여 가장 적절한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 각각 저희 시대에 알맞은 진리를 전파한 것처럼 지금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 시대에 대한 특별한 경고를 발해야 할 것이다.

 

29. 도처에 있는 재난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그리스도의 피로써 산 바 된 자들이 복음 가운데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로운 복음을 조롱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그들 자신의 유한한 이지력(理智力)과 근거 없는 이론을 신뢰하는 광경을 보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슬픈 일은 없다. 고통으로 시험을 받고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 그들이 품고 있던 이와 같은 모든 오류는 햇빛 앞에 서리처럼 녹아버릴 것이다.

하늘의 은혜의 호소를 거부한 자의 관 곁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 멸망을 당한 한 영혼이 있다! 최고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고, 또한 영생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를 사탄에게 복종시켜 인간의 헛된 철학의 올무에 걸려 마귀의 장난감이 된 자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그리스도께서 앞서 들어가신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올 위대한 사건을 대비하기 위하여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청년들은 좀 더 열렬히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맹렬한 폭풍을 대처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주께서 일어나사 땅을 놀랍게 진동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다. 수천 척의 배가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해군들은 물에 빠지고, 수백만 명씩 인명이 희생당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화재들이 발생할 것이며, 어떠한 인간의 노력으로도 그 불을 진화하지 못할 것이다. 지구의 궁전들은 맹렬한 화염으로 잿더미가 될 것이다. 철도 사고는 더욱 빈발하게 될 것이다. 혼란과 충돌과 또한 일각의 예고도 없는 사망이 중요한 교통로에서 일어날 것이다. 끝은 가깝다. 은혜의 기간은 끝나려 하고 있다. 오! 우리는 여호와를 찾을 만할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자! 선지자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고 말한다.

 

30. 영혼을 위한 중재 기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개심하지 않은 사람들과 암흑 가운데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 정해 놓고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마다 하늘의 지혜가 부어져서 이런 노력과 협력하였으며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만일 교회 안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다면, 성도들을 작은 그룹을 만들어 성도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한 곳에 진리를 아는 사람이 두세 사람만 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 사역할 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연합의 유대를 깨뜨리지 않고, 사랑과 연합으로 함께 결속해야 한다. 그리고 전진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각각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용기와 힘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오래 참음과 인내를 나타내고, 가장 거룩한 믿음 안에서 피차 덕을 세우기 위해 말의 달란트를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양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으로 활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노력에서는 자아를 잊어버려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하고 활동할 때 그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죄악이 편만하고 그러한 죄악 상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면, 멀리 선교를 위해 나가는 것보다 먼저 우리 주변의 탄원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선교 지역은 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예루살렘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세상 끝까지 증거하라고 지시하였다. 불과 얼마 안 되는 수의 사람들이 그 교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여러 나라를 지나며 가깝고 먼 곳에서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리하여 복음을 곳곳마다 신속히 전하였다. 구주의 약속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자기의 뜻과 소원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권면을 듣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우둔한 학자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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