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76호 매일의 말씀

열한시 276호 매일의 말씀

 

1. 암논과 압살롬의 죄

“삭개오가…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비유를 듣다가 “저가…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6)고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에게 선고를 내린 것처럼 자신의 선고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 중 넷은 죽을 수밖에 없었고 그 각인의 상실은 아비의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다윗은 장자 암논의 치욕적인 죄를 형벌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은 채 지나가게 놔뒀습니다.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인도에 어긋난 암논의 범죄는 그로 이중으로 유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대한 자책을 받은 다윗은 범죄자를 형벌할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더럽게 수치를 당한 누이의 당연한 보호자인 압살롬은 최후에 더욱 실수 없이 처치하기 위하여 만 2년 동안 자기의 복수심을 감추어 왔습니다. 왕의 아들들의 잔치에서 거나하게 취한, 근친상간의 죄를 저지른 암논은 그의 아우의 명령에 따라 살해되었고 압살롬은 그의 외할아버지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망하였습니다.
다윗의 다른 아들들처럼 암논은 이기적 방종에 몰두하였습니다. 암논은 하나님의 요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의 마음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가 크게 범죄 하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오랫동안 참으셨습니다. 2 년간 그에게 회개할 기회가 허락되었지만 그는 범죄 하기를 계속했습니다. 무서운 형벌의 심판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음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암논의 범죄를 처벌하기를 게을리했습니다. 왕이요 아버지인 그의 불충실과 그 아들이 회개치 않은 까닭에 여호와께서는 사건들이 그 당연한 진로를 따르도록 허락하시고 압살롬을 제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나 통치자가 죄악을 처벌할 의무를 게을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제지하시는 능력이 악의 대리자들로부터 조금만 거두어져도 악이 악으로 처벌되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요압과 드고아 여인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3,4)

다윗이 암논의 죄를 묵인한 죄의 결과가 이것으로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그술로 도망한 후 다윗은 그의 아들이 범한 죄는 어떠한 처벌이 요구된다는 것을 느끼고 그가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왕도 포함되어 있는 뒤얽힌 죄악을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경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정력과 야망은 있으나 절조가 없는 압살롬은 추방으로 인해 국사에 관여하지 못했으며 얼마 후에 위험스러운 음모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2년 끝에 요압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게 하기로 결심하고 지혜롭다는 평판이 있는 드고아 여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요압의 시킴을 받고 이 여인은 다윗에게 자기는 두 아들만을 유일의 위로와 의지로 삼아 오던 과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싸워 그중 하나가 다른 자를 죽였으며 이제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살아남은 자를 죽여 죽은 자를 위해 보복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그러한즉 저희가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끼쳐 두지 아니하겠나이다”(삼하 14:7)고 하였습니다. 왕의 마음은 이 탄원에 감동되었고 그는 그녀의 아들을 왕이 보호할 것이라고 그 여인에게 보증하였습니다.
여인은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세우사 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라고 말했습니다. 거친 무사인 요압에게서 나온 죄인을 향한 이처럼 부드럽고 감명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묘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속의 대진리를 익숙히 알고 있다는 현저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자신의 필요를 느낀 왕은 “가서 소년 압살롬을 데려오라”(삼하 14:21)고 명령하였습니다.

 

3. 야망의 불씨

“회 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올 허락을 받았으나 궁전에 나타나거나 그의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자녀들에 대하여 방종한 악한 결과를 보기 시작하였고 이 아름답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까닭에 압살롬과 백성들 양편 모두에게 이와 같은 범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누이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녀가 당한 회복할 수 없는 수치를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판단으로는 왕자가 범죄자라기보다 차라리 영웅이었으며 이런 이점을 가지고 그는 백성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외모는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찬탄을 얻을 만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흠이 없음이라”(삼하 14:25). 왕이 야망적이요 충동적이요 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하여금 2년 동안이나 소문이 파다한 불평의 씨를 품고 있도록 방임해 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돌아오도록 허락하였으나 자기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한 처사는 압살롬에게 백성의 동정을 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기의 범죄에 대한 기억이 항상 그의 앞에 있어서 다윗은 도덕적으로 마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범죄 하기 전에는 용기 있고 단호한 사람이었으나 이제 그는 연약하고 우유부단하였습니다. 백성들에 대한 그의 감화력은 약화되었으며 이 모든 일은 천리(天理)를 어긴 아들의 음모를 유리하게 하였습니다.
요압의 영향으로 압살롬이 다시 그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어 표면적으로는 화해가 이루어졌을지라도 그는 야망적 음모를 계속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이제 거의 왕자다운 위엄을 갖추어 병거와 말들과 그의 앞에 달리는 자 50명을 가졌습니다. 한편 왕은 더욱 은퇴하여 한거하려는 소망으로 기울어지고 압살롬은 부지런히 백성들의 총애를 구하였습니다.

 

4. 압살롬의 위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다윗의 귀찮아하고 우유부단하게 하는 영향이 그의 신하들에게까지 확대되어서 재판 업무에도 태만과 지체하는 일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압살롬은 교활하게 모든 불만의 원인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날마다 성문에 나타났는데 그곳에는 저희 억울함을 시정해 주기를 기다리는 간청자들에게 압살롬은 그 무리와 섞여 그들의 불평의 호소를 듣고 그들의 고통에 동정을 표시하고 정부의 무능을 한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왕자는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삼하 15:3)고 대답하고 덧붙여 말하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삼하 15:4, 5)었습니다.
왕자의 교활한 암시에 선동을 받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빨리 유포되었고 모든 사람의 입술에는 압살롬을 칭찬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를 나라의 후사로 알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가 이 높은 신분에 처할 만하다고 자랑스럽게 그를 바라보았고 그를 보좌에 앉히려는 열망이 불타올랐습니다. “압살롬이…이스라엘의 마음을 도적하니라”(삼하 15:6). 그러나 아들에 대한 애정에 눈먼 왕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압살롬이 받은 왕자다운 위엄을 다윗은 그의 궁정의 명예 즉 화해에 대한 기쁨의 표시가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앞으로 올 일에 대하여 준비가 된 것을 보고 압살롬은 각 지파에게 모두 선정한 사람들을 은밀히 보내어 반역에 대한 방안을 강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종교적 예배란 구실로 그의 반역적 음모를 은닉하고자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삼하 15:7)라고 했습니다.

 

5. 무르익은 반역의 물결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시 3:1)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경건에 위안을 받으며 축복을 베풀어 돌려보냈습니다. 음모는 이제 완전히 성숙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더할 나위 없는 위선적인 행위는 왕을 눈멀게 할 뿐 아니라 백성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고안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에 대하여 반역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출발하고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그 사기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삼하 15:11)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아들에 대한 저들의 사랑이 그들을 그의 아버지께 대한 반역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압살롬과 함께 갔습니다. 헤브론에 도착하자 압살롬은 즉시 아히도벨을 소환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모사의 두목 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지혜로 평판이 나 있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의 의견은 신의 명령처럼 안전하고 지혜롭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반역자들에게 가담했고 그의 가담은 압살롬의 사업이 분명히 성공할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깃발 아래 전국 각 곳으로부터 많은 유력한 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반역의 나팔이 울릴 때에 왕자의 정탐꾼들은 온 나라에 퍼져 압살롬이 왕이 되고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동안에 경보는 예루살렘에 전달되어 왕에게 알려졌습니다.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의 보좌 곁 가까이에서 일어난 반역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 아들, 그가 사랑하고 믿던 아들이 그의 왕관을 빼앗고 의심 없이 그의 생명을 취하려고 음모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큰 위기에 그처럼 오랫동안 그를 누르던 억압을 떨쳐 버리고 그의 소년 시절의 정신을 가지고 이 무서운 급변을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압살롬은 2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헤브론에서 그의 군대를 소집하고 있었습니다. 반역자들은 곧 예루살렘 성문에 당도할 것입니다.

 

6. 위기를 하나님께 맡김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룻 1:11)

다윗은 수도 예루살렘이 살육과 참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전쟁의 공포가 택하신 성읍에 내리지 않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백성들에게 그를 지지하기 위해 다시 모일 기회를 주어 그의 백성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큰 위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의무였기 때문에 싸움의 결과를 그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다윗은 겸비하고 슬퍼하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반란으로 자기의 왕좌와 궁전과 하나님의 법궤를 버리고 예루살렘 성문을 나섰습니다. 백성들은 마치 긴 장례 행렬처럼 비탄에 젖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다윗의 호위병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그리고 잇대의 휘하에 있는 가드 사람 6백 명이 왕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이타심이 강한 다윗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온 이 이국 사람들을 자기의 재난에 함께 휩쓸리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저희가 자기를 위하여 이처럼 희생하려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가드 사람 잇대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삼하 15:19, 20)라고 하였습니다.
잇대는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생사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삼하 15:21)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교 신앙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으로 개종한 이들로서 그들은 이제 저희 하나님과 저희 왕에게 대한 그들의 충성을 훌륭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겉보기에 기울어져가는 그의 사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받아들이고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하였습니다.

 

7. 법궤를 돌려보냄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시 132:14)

다윗의 행렬이 광야 길로 향하고 있을 때 거룩한 제복(祭服)을 입은 한 무리가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삼하 15:24)고 나아왔습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이것을 좋은 징조라고 바라보았습니다. 이 거룩한 분의 상징의 출현이 그들에게 구원과 최후 승리의 보증이며 이 일은 백성을 감동시켜 그들로 용감하게 왕에게 다시 모이도록 할 것입니다. 반면에 법궤가 예루살렘에 없는 것은 압살롬의 지지자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것입니다.
법궤를 보자 잠시 동안 기쁨과 희망이 다윗의 마음을 전율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다스리도록 임명된 통치자로서 그는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마음에는 개인적 이익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백성의 행복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위 없이는 제사장이나 왕이라도 그분의 임재의 상징을 거기에서 옮길 권리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마음과 생애가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하지 않으면 법궤가 성공보다는 차라리 재난의 방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큰 죄는 항상 그의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 반역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형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칼이 이제 뽑혀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거룩하신 주권자의 뜻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나라의 헌법이요 나라의 번영의 기초인 거룩한 율법을 나라의 수도에서 옮기는 것은 그를 위하는 일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사독에게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 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25, 26).

 

8. 계속되는 고난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슥 14:2,3)

성읍에서 제사장들은 반역자들의 움직임과 의도를 알아 가지고 그것들을 그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통하여 은밀히 왕에게 전달하므로 왕에게 좋은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떠나는 무리에게 깊은 그늘이 덮였습니다. 저희 왕은 도망하는 자가 되고, 저희 자신들은 추방당하고, 하나님의 법궤에까지 버림을 받을지 모르는 공포와 불길한 예감으로 캄캄하였습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삼하 15:31)였습니다. 다시 다윗은 그의 재난이 자신의 범죄의 결과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유능하고 가장 꾀 많은 정치적 지도자인 아히도벨의 반역은 그의 손녀 밧세바가 입은 치욕과 그에 따른 가문의 수치를 보복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왕은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께 그의 영혼의 괴로움을 맡기고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을 받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명하고 유능한 모사이며 다윗의 충실한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이제 스스로 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쓰고, 왕권을 빼앗기고 망명자가 된 다윗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하여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깨우치심을 받아 충실하고 마음이 참된 이 사람이 수도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한다면 크게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요구를 듣고 압살롬을 섬기면서 아히도벨의 교묘한 모략을 꺾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5~8).

 

9. 고난 중에서도 빛나는 성품

“여호와가 말하노니…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시무이는 다윗이 번영 중에 있을 때에는 충실한 신하임을 나타냈었지만 왕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이 베냐민 사람은 그의 참 성격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에는 그를 존경하였으나 그가 굴욕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를 저주하였습니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한 성격을 가진 자들처럼 여겼으며 사탄의 충동을 받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자에게 자기의 증오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 중에 있는 자를 치게 하고 그를 욕하고 괴롭히게 하는 정신은 사탄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시므이의 비난은 전적으로 거짓말이었으며 근거 없고 악의에 찬 중상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나 그의 집에 대하여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완전히 그의 세력 아래 들어와 그를 죽일 수 있는 때에라도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베었던 다윗은 이제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게 이런 불경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도 오히려 자기 자신을 책망할 뿐이었습니다. 다윗이 인간의 생명을 존중히 여긴 현저한 증거가 쫓겨 다니는 동안에까지도 나타났습니다. 하루는 그가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에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삼하 23:15)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베들레헴은 블레셋 사람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무리 중 세 용사가 경계선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의 물을 길어 그들의 군주에게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삼하 23:17)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물을 부어 경건하게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고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사나운 장면 중에서 보냈습니다. 이와 같은 엄한 시련을 통과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타락시키는 감화를 다윗처럼 받지 않은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10.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뢰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다윗의 조카요 그의 가장 용감한 군장 중의 한 사람인 아비새는 시므이의 모독하는 말을 참고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 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삼하 16:9)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를 금하여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6:11,12)라고 말했습니다.
양심은 다윗에게 쓰리고 굴욕적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충실한 신하들은 돌연한 그의 불운을 보고 이상히 여겼지만 왕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끔 이와 같은 일에 대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를 그처럼 오래 참으시고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을 내리시지 않고 지체하시는 데 대해 이상히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급하고도 슬픈 도망으로 그의 발은 맨발이었고, 그의 왕복은 베옷으로 바뀌었으며, 그의 추종자들의 애곡은 이 산 저 산에 메아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그는 그의 범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기억하였습니다. 그에게서 희망이 사라진 것은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여전히 그를 은혜로 다루시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날까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많은 범죄자들은 다윗의 타락을 지적하면서 저들의 죄를 핑계하지만 다윗의 회개와 겸비를 나타내는 자는 얼마나 적은지 모릅니다. 다윗이 나타낸 인내와 불요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책망과 보응을 견디는 자가 참으로 적습니다. 다윗은 그의 죄를 자복하였고 여러 해 동안 충실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1. 회초리 아래를 지나는 자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시 89:31~33)

다윗이 그의 생애에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한 결과와 온갖 재능으로 이룬 사역을 이유로 현재의 큰 고통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을 하기보다 그는 자신의 죄에서 그가 고통 당하는 원인을 찾았습니다. 선지자 미가의 말은 다윗의 마음을 감명시킨 그 정신을 풍기고 있습니다.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미 7:8,9).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쓰라린 학대와 모독 중에서도 겸손과 무아의 정신과 관대함과 유순함을 나타낸 그의 이 같은 경험의 이야기는 그의 온 생애의 경험 중에 가장 고상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이 가장 처절한 외적 굴욕을 당하던 이 시간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더 위대한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윗이 범죄 하기를 계속하여도 견책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서도 왕위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하셨더라면 회의론자와 이교도들은 다윗의 역사를 인용하여 성경의 신앙을 비난하는 어떤 핑계를 삼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으로 하여금 겪게 하신 그 경험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죄를 허용하시거나 묵인하실 수 없으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역사는 또한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시는 크신 목적을 우리로 알 수 있게 하며, 비록 가장 침울한 형벌을 통하여서도 그분의 은혜와 자비의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우리로 알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회초리 아래로 지나가게 하셨으나 그를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풀무는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지 태워 없애 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12. 아히도벨의 음모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난 직후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입성하여 싸움도 없이 궁전을 점령하였습니다. 후새가 새로 왕위에 오른 군주를 환영하는 첫 무리 중에 있었고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의 옛 친구요 모사인 후새가 나온 것을 보고 놀라고 만족히 여겼으며 민족의 신임을 얻고자 후새를 궁전으로 영접해 들였습니다.
압살롬의 모사인 아히도벨은 다윗의 입장이 절망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국민의 대부분이 다윗에게 충성하고 있으며, 그는 저희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연단을 받은 전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으며 그의 군대는 유능하고 노련한 장수들의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새 왕을 찬성하는 처음 열광이 지나가면 반발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반란이 실패하더라도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나 그때에 아히도벨은 그의 모사의 두목으로서 반란에 대한 가장 중한 죄를 지게 되고 그에게 가장 무거운 형벌이 내릴 것입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은 압살롬으로 하여금 그의 내디딘 발걸음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에게 온 국민의 목전에서 화해를 불가능하게 할 행위를 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이 교활하고 파렴치한 정치가는 흉악한 간지(奸智)로 압살롬에게 반역의 죄에 근친상간의 죄를 더하도록 간청하였던 것인데, 압살롬에게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동방 민족들의 풍속을 따라 그의 아버지의 후궁들을 취하고 그가 그의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것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이 비루한 제의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 12:11,12)라고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악한 행위를 하도록 하심이 아니요 다만 다윗의 죄의 까닭에 그것을 막기 위해 그분의 권능을 행사하지 않으신 것뿐이었습니다.

 

13. 지혜의 근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 9:10)

아히도벨은 그가 지혜로운 까닭에 큰 존경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반역을 성공시키기 위해 근친상간이라는 죄악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실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악을 꾸미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킬”(잠 1:30~32)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안전을 얻기 위한 계획에 성공한 아히도벨은 다윗을 대항하여 즉시 행동을 개시해야 할 필요성을 압살롬에게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하면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삼하 17:1~3)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모사들이 이 계획에 찬성하였고 만일 이 계획에 따라 행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는 한 다윗은 분명히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아히도벨의 지혜보다 더 높은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사건을 지배하고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삼하 17:14).
후새는 그 회의에 초청을 받지 않았지만 억지로 참석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자기가 정탐꾼으로 의심을 받을까 해서였습니다. 폐회 후 아버지의 모사의 판단을 크게 존중한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획을 후새에게 제시하였습니다. 후새는 고안된 계획을 따르게 되면 다윗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후새는 “이때에는 아히도벨의 베푼 모략이 선치 아니하니이다”(삼하 17:7)라고 말했습니다.

 

14. 아히도벨의 최후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7, 8)

후새는 만일 압살롬의 군대가 다윗을 추격할지라도 그들은 왕을 사로잡을 수 없고 패배를 당할 것이며 이는 그들을 낙담하게 하고 압살롬의 사업에 큰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부친은 영웅이요 그 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삼하 17:10)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 잘난 체하고 이기적 성질과 권력을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압살롬의 마음을 끄는 계획 즉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삼하 17:11) 라고 제시하였습니다. 이때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삼하 17: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략에 속임을 당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아히도벨이었습니다. 그는 이 압살롬의 치명적인 과오의 결과를 분명히 내다보았고 반역자들의 사업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자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왕자의 최대의 범죄를 충동한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반역하도록 격려했고 가장 끔찍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께 욕을 돌리도록 그를 권고했으며 또 그는 다윗을 살해하도록 조언하는 동시에 그 일을 성취시킬 계획을 세우고 그 자신이 왕과 화해할 마지막 가능성을 끊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압살롬은 그의 앞에서 다른 사람을 등용하니 질투와 분노와 절망 중에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삼하 17:23)었습니다. 탁월한 재능을 구비했으나 하나님을 그의 고문으로 삼지 아니한 자의 지혜의 결과는 이와 같았습니다. 사탄은 유망해 보이는 약속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나 결국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란 사실을 모든 영혼들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5. 진정한 신뢰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변덕스러운 왕이 자기의 권고를 꼭 따라 주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후새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다윗에게 지체 말고 요단 건너편으로 도망하도록 경고하였습니다. 도망하던 첫날부터 수고와 슬픔으로 세월을 보낸 다윗은 그의 아들이 자기의 생명을 찾고 있으므로 그 밤에 요단을 건너야 한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무참하게 욕을 당한 아버지요 왕인 다윗, “호기”와 무용의 사람이요 그의 말이 곧 법이었던 왕이 이제 그가 사랑해 왔고 맹목적으로 지혜롭지 못하게 믿었던 아들에게 배반당하고 명예와 신의로 결속되어 있던 그의 신하들로부터 모욕과 버림을 당한 다윗은 가장 어두운 시련의 시간에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머물러 있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 3:1~8).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마하나임으로 후퇴하였는데 그곳은 이스보셋의 왕좌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견고하게 축성된 성읍으로 전쟁 때에 퇴각하기 좋은 산지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식량이 잘 공급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다윗의 일에 호의를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많은 지지자들이 다윗의 편에 가담하였고 같은 족속의 부자들은 풍부한 양식과 필요한 물품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후새의 모략은 그 목적을 성취하여 다윗에게 도망할 기회를 주었으나 조급하고 성급한 왕자는 오래 참을 수가 없어 그는 곧 그의 아버지를 추격하였습니다.

 

16.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수 10:11)

압살롬은 다윗의 누이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를 그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삼았습니다. 압살롬의 군사는 대군이었으나 훈련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의 아버지의 노련한 병사들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군대를 3개 대(隊)로 나누어 요압과 아비새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친히 전장에 나아가 그의 군대를 지휘하려 하였으나 이 일을 군장들과 모사들과 백성들이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왕위의 찬탈자는 대군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의 대군에 비하면 다윗의 군대는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적군을 바라볼 때에 그의 마음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왕위도, 나라도, 전쟁에 걸린 자신의 생명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의 반역한 아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군대가 성문에서부터 줄을 지어 행진할 때에 다윗은 충성스러운 병사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나아가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당에서도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그의 사랑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첫 대를 인솔하는 요압은 수백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정복자였습니다. 그가 그의 군주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기 위하여 거만스러운 그의 머리를 숙였을 때에 왕은 떨리는 음성으로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삼하 18:5)라고 말했습니다. 아비새와 잇대도 동일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그에게는 그의 나라보다 소중하고 그의 왕위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보다 귀중하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리는 왕의 호소는 인륜에 어긋나는 아들에 대한 군사들의 분개심을 증가시킬 뿐이었습니다.
싸움이 벌어진 장소는 요단강 근처에 있는 숲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압살롬의 군대의 수효가 많은 것이 그에게 불리할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날 그곳에서 살육이 커서 이만에 이르렀다”(삼하 18:7).

 

17. 반역자의 최후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싸움에 진 것을 보고 압살롬이 돌아서 도망하려 할 때에 그의 머리가 뻗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에 걸렸고 그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매달려 원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병사가 이런 형편 중에 있는 그를 보았으나 왕의 불쾌히 여기심을 두려워하여 압살롬을 살려 두고 그가 본 것을 요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요압은 압살롬의 편이 되어 두 번이나 그로 다윗과 화해하도록 했으나 그 신임은 수치스럽게도 배반당했습니다. 그리고 요압의 중재를 통하여 압살롬이 유리한 지위를 얻지 않았던들 이 반역과 거기 따른 모든 무서운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악의 선동자를 일격에 멸할 권세가 요압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덩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삼하 18:14~17).
그리하여 이스라엘 중에 반역을 선동한 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랑이었던 고귀한 압살롬은 혈기 왕성한 청춘 시절에 죽임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구덩이에 던진 바 되어 영원한 질책의 표로 돌무더기에 덮였습니다. 압살롬은 생시에 자신을 위하여 왕의 골짜기에 값진 비석을 세웠으나 이제 그의 무덤을 표하는 기념비는 다만 광야에 있는 그 돌무더기였습니다.
첫째 사자인 아히마아스는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란 왕의 애절한 질문에 회피하는 대답을 하였으며 마침내 둘째 사자가 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삼하 18:32)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으로 넉넉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이상 더 묻지 아니하였고 머리를 숙이고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삼하 18:33).

 

18. 공의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느 9:27)

전쟁 마당에서 돌아오는 승리의 군대가 성문에 들어설 때에 승리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의 깃발은 저희 손에서 수그러지고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그들은 정복자라기보다 오히려 패배를 당한 자들처럼 행진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왕이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아니하고 문루에서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통곡하고 부르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삼하 19:2,3).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의 절제되지 못한 감정 처리가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도 당연한 일이지만 왕으로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다윗의 태도는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요압은 매우 분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의기양양하고 기뻐할 이유를 주시고 일찍이 이스라엘 중에서 알려진 반역 중 최대의 반역을 파쇄하게 하셨으나 이 큰 승리는 그의 범죄로 무수한 용사들의 피를 흘리게 한 압살롬을 위한 애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사납고 솔직한 대장 요압은 왕의 앞으로 달려가 담대히 말하기를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삼하 19:5~7)라고 하였습니다.
비탄에 빠진 왕에게 가혹하고도 잔인하기까지 한 책망이었으나 다윗은 그것에 분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장수가 옮음을 알고 다윗은 문으로 내려가 그의 용감한 병사들이 그의 옆을 행진할 때에 용기와 칭찬의 말로 그들을 환영하였습니다.

 

19. 다윗을 통한 교훈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압살롬은 멸망했지만 민족의 대부분이 반역에 가담했으므로 압살롬의 패배에 뒤따른 혼란 중에 왕을 다시 모시려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유다 지파에서 다윗을 돌아오게 하려는 일을 기도했을 때에 다른 지파들의 질투심을 일으켜서 마침내 반혁명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속히 진압되어 이스라엘에 다시 평화가 돌아왔습니다.
다윗의 역사는 영혼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가장 열렬히 갈망하는 권력과 부와 세속적 명예로부터 오는 위험에 대한 가장 감명적인 증언을 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이와 같은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저희를 준비시켜 주는 매우 적절한 경험을 겪고 그 시험을 통과한 자들은 매우 적습니다. 다윗이 목자로서의 초기의 생애에서 겸손과 수고를 참고 친절히 양 떼를 돌보는 데서 얻은 교훈들과 한적한 들에서 자연과 접촉하고 음악과 시에 대한 재능을 계발하며 그의 생각을 창조주께 향하게 한 것들과 오랜 광야 생활의 단련으로 용기와 견인불발과 인내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행사하도록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할 준비로서 정하신 과정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귀중한 경험을 겪었고 성령의 풍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역사에서 그는 단순한 인간적 지혜가 얼마나 무가치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과 명예는 다윗의 품성을 매우 약하게 하여 그는 유혹자에게 여러 번 패배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이방 백성과의 교제는 그 민족들의 풍습을 따르고 싶은 욕망을 일으켰고 세속적 위대함에 대한 야심을 불붙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영광을 받았으나 교만과 자신감(自信感)이 증가할 때에 그들은 그 정도로 뛰어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민족들 중에서의 높은 명성을 갈구하였는데 이런 정신은 유혹을 자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 백성을 계수한 죄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다윗은 외국 민족들 중에 그의 정복을 확대할 목적으로 군대를 증강시키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적령에 달한 모든 사람에게 군 복무를 요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구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왕이 이 일을 한 것은 교만과 야심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을 계수함으로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라가 약하였던 것과 그의 치세 아래 나라가 강하고 번영한 것 사이의 큰 차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일은, 이미 왕과 백성 양편이 다 지나치게 자신들을 믿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더욱더 조장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치세 하에서 이스라엘이 번영한 것은 왕의 능력이나 그 군사력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에 기인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군사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인근 민족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신뢰하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군대라는 인상을 줄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희 나라가 커지는 데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그들은 그처럼 군 복무를 크게 확대시키는 다윗의 계획에는 찬성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계획된 병적 등록은 많은 불만을 일으켰고 따라서 이전에 계수에 동원했던 제사장과 장관들 대신에 군대 장교들을 고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일의 목적이 직접적으로 신정의 원칙에 배치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무법한 자처럼 나타낸 요압까지도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대상 21:3)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대상 21:4)습니다. 계수가 다 끝나기 전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으며 양심의 가책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대상 21:8).

 

21. 솔로몬 성전의 유래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창 22:9)

다윗의 불신으로 인하여 온 땅에 온역이 내려 이스라엘 중에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재앙은 아직 수도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한 자는 곧 내니이다…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대상 21:17).
인구 조사하는 일은 백성 중에 불만을 일으켰으나 그들 자신들도 다윗의 행위를 자극한 동일한 죄악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압살롬의 죄를 통하여 다윗을 형벌하신 것처럼 다윗의 과오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벌하셨습니다.
멸망시키는 천사가 예루살렘 밖 그의 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모리아산 위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지시를 받아 다윗은 그 산에 올라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대상 21:26)셨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 24:25).
제단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때 이후로 언제나 성지로 여김을 받은 그 장소를 오르난이 왕에게 선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곳을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대상 21:24,25)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제단을 쌓았던 장소로서 기념할 만하고 이제 이 큰 구원으로 거룩하게 된 이곳은 후에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부지로 선정되었습니다.

 

22. 아도니야의 반역

”아이들은 미련한 짓을 하기가 일쑤지만 징계의 채찍으로 이런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잠 22:15, 현대어)

다윗은 70 노령에 접어들면서 소년 시절의 방랑 생활 동안의 고난과 추방, 그가 싸운 많은 전쟁, 만년의 근심과 고통은 그의 생명의 원천을 침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정신은 명료하고 힘이 있었으나 노령과 쇠약으로 인해 나라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빨리 알지 못하게 되고 그의 은퇴를 바라는 자들의 욕망이 커져서 마침내 반역이 바로 그의 보좌 그늘에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부모로서 방종했던 열매가 아도니야인데 그는 체용과 태도가 심히 준수하였으나 절조가 없고 무모했습니다. 그는 젊어서 조금도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 이는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던”(왕상 1:6) 까닭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솔로몬을 왕위에 임명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하였습니다. 타고난 천품이나 신앙상 성품 양면으로 보아 솔로몬은 그의 형보다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기에 보다 더 적합한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선택이 분명히 지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지지자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반역은 무르익어 음모자들이 아도니야를 왕으로 선포하기 위해 성읍 바로 밖에서 큰 잔치를 열고 있을 때에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는 신속하게 왕에게 사태를 말하고 그에게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즉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면서 그들의 음모는 좌절되었고 그 두목들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아비아달은 죽음은 면했으나 대제사장 직분에서 파면 당하였고 그 직분은 사독의 가계로 넘어갔습니다. 요압과 아도니야도 당분간 용서를 받았으나 다윗이 죽은 후에 그들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에게 형벌을 집행하므로 다윗의 죄에 대해 사배의 형벌을 채우게 되었고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아비의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23. 성전 건축의 준비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찐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시 132:12)

다윗의 치세 바로 시초부터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긴 계획 중의 하나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이 계획을 실행할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성전 건축을 위한 성심과 열성은 줄어들지 않음을 나타내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값진 재료 곧 은, 금과 홍마노와 채석과 대리석과 가장 진귀한 목재를 풍부히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모은 이 귀중한 보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해야 하였으니 이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위하여 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움을 알자 왕은 이 위임하는 유산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함께 그 나라 각처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임종의 부탁을 그들에게 맡기고 성취되어야 할 대사역에 대해 그들의 협력과 지지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몸이 쇠약한 까닭에 그가 몸소 이 위임식에 참석하기를 바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영감이 그에게 임함으로 인하여 그는 평상시의 열성과 능력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그의 백성에게 명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 건축에 대한 자신의 열망과 이 사업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증은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 아비가 될 것임이라 저가 만일 나의 계명과 규례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날과 같이 하면 내가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대상 28:6, 7) 하셨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 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고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대상 28:8) 하였습니다.

24. 다윗의 후계자 교육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히 12:28)

다윗은 하나님을 떠나는 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 길임을 자신의 경험에서 배웠습니다. 그는 깨뜨린 율법의 선고를 뼈저리게 느꼈고 범죄의 열매를 거두었으므로 이제 다윗의 온 영혼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아들인 솔로몬이 자기 아비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그의 생애를 비참하게 하고 하나님께 욕을 돌렸던 그 죄악들을 피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겸손히 하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끊임없이 경계하여 높은 자리에 있는 솔로몬을 괴롭힐 것이 분명한 많은 유혹을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사탄의 특별한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왕위의 후계자로 공인된 그의 아들을 향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대상 28:9, 10).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주어 하나님의 영감으로 그에게 알려 주신 바와 같이 각 부분과 그 봉사의 모든 기구의 양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직도 어린 솔로몬은 그에게 부과된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의 무거운 책임을 겁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아들에게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 28:20)라고 말했습니다.

 

25. 마지막 호소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5)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 즉 교회 사역은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닌 자원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질서와 예의, 충성과 신속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회중들에게 한 마지막 호소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좌우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 있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우리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옵시며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예비한 것으로 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대상 29:10~19).

 

26. 불멸의 신앙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재료를 모음에 있어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의 귀인들이 그들의 보물들을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께 봉헌하고 그분을 섬기는 데 헌신함으로 즉시 응답하여 충성을 표시하자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에게 이러한 마음을 나누어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세상 재물을 장만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셨고 그분의 성령은 그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위하여 값진 물건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았으니 이는 만일 여호와의 사랑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였더라면 왕의 노력은 헛되었을 것이고 성전은 결코 건축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이 받은 하나님의 하사물(下賜物)은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세상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그분의 은총에 대한 그들의 감사의 깊이를 재려고 그들의 손에 두신 것입니다. 그것이 재산이라는 보물이든지, 지력이라는 보물이든지 간에, 예수님의 발 앞에 자원하는 헌물로 바쳐야 하며 한편 헌납자들은 다윗처럼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해야 합니다.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에 다윗의 마음의 걱정은 여전히 솔로몬과 이스라엘 나라에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의 번영이 그 왕의 성실성에 매우 크게 의존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다윗의 “최후의 말”은 하나의 시가(詩歌)입니다. 즉 그것은 신뢰와 가장 고상한 원칙과 불멸의 신앙에 대한 노래입니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삼하 23:5).

 

27. 하나님의 언약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17,18)

다윗의 타락은 컸으나 그는 깊이 회개했고 그의 사랑은 열렬했고 그의 신앙은 몹시 강했습니다. 그는 많이 용서를 받았으므로 많이 사랑하였습니다.(눅 7:47 참조) 그런 의미에서 다윗의 시편은 고범죄와 양심의 가책의 깊은 구렁에서부터 최고의 신앙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고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경험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의 기록은, 죄는 수치와 괴로움만을 가져올 뿐이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가장 깊은 구렁에까지 도달할 수 있어서 믿음으로 회개하는 영혼을 높이사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포된 모든 보증 가운데 이것이 충실과 공의와 하나님의 자비로운 언약에 대한 가장 강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동안에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강성하게 되었고 진리와 의를 위하여 강력한 감화를 끼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가졌습니다. 여호와의 성호는 높이 영광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정주하게 된 목적은 성취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장벽들은 무너져 내리고 이방 나라에서 진리를 찾아온 자들 중 만족함이 없이 돌아간 자가 없었습니다. 개종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지상의 하나님의 교회는 커지고 번영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말년에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으며 다윗은 기꺼이 왕위를 그에게 양위했습니다. 솔로몬의 초기의 생애는 전망이 밝았고 하나님의 목적은 그가 점점 강성해지고 영광스럽게 되어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비슷하게 닮아감으로 그분의 백성에게 감명을 끼쳐, 그들로 하나님의 진리의 보고(寶庫)로서의 거룩한 임무를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높으신 목적이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끊임없이 깨어서 저희 앞에 놓인 표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함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28. 청년 솔로몬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기를 기뻐하신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 젊은 통치자가 단순한 무사나 정치가나 군주가 될 것이 아니라 강하고 선량한 사람, 의의 교사, 충성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조심스럽고 진지한 태도로 솔로몬에게 신하들에겐 자애로우며 사내답고 고상한 사람이 되고 지상 열국과의 모든 거래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도록 간청하였습니다. 다윗은 일생 동안 겪은 많은 시련과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보다 고상한 덕성의 가치를 배웠고 솔로몬에게 주는 유언 중에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삼하 23:3,4)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청년 시절에 솔로몬은 다윗이 택한 길을 자신의 길로 삼아 여러 해 동안 정직하게 행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순종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의 통치 초기에 나라의 모사들과 같이 광야에서 건축한 성소가 그대로 서 있던 기브온에 가서 그의 택함을 입은 고문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대하 1:2)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성별하였습니다. 왕의 직무와 관련된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임을 깨달은 솔로몬은 중임을 맡은 자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만족하게 수행하려면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모사들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그와 연합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왕은 모든 세속적 이익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혜와 총명을 갈망하였고 그는 민첩한 마음과 넓은 도량과 부드러운 정신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29. 솔로몬의 꿈

“자기 아들을…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하나님께서는 꿈속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대하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젊고 경험 없는 통치자는 그의 대답에서 자기의 무능함과 그가 얼마나 도움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왕상 3:10).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경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대하 1:11), “내가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왕상 3:12,13),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대하 1:12).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솔로몬과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왕이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면 그의 보좌는 견고해지고 그의 통치는 이스라엘을 높여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 곧 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빛이 되게 하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30. 지혜를 구하는 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기브온에 있던 옛 제단 앞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사용한 말은 그의 겸손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강한 소망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들을 전혀 감당할 수 없는 무력한 작은 아이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분별력이 부족함을 알고 그것의 필요를 절실히 느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게 되려고 지식을 갈구하는 이기적인 야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부과된 의무들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였고 그의 통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편이 되게 할 재능을 선택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을 때보다 더 부요하고 현명하고, 참으로 위대했던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솔로몬의 기도가 가르치는 교훈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이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져야 할 책임이 크면 클수록 그가 끼치는 감화도 커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도 커지게 됩니다. 일하라는 부르심에는 그 동료들 앞에서 신중히 행하라는 부르심도 따른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자의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지위가 성품의 거룩함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사람은 참으로 위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솔로몬에게 슬기로운 식별력을 주신 그분은 오늘날의 그분의 자녀들에게도 기꺼이 동일한 축복을 나누어 주고자 하십니다. 중책을 맡은 사람이 부나 권세나 명성을 구하기보다 지혜를 구한다면 그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사람은 위대한 교사에게서 무슨 일을 할지를 배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하는 법까지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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