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72호 [매일의 말씀]

272호 [매일의 말씀]

 

1. 사랑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우리는 과학을 연구하는 중에서도 역시 창조주께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참 과학은 물질세계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설명하는 데 불과한 것이지요. 과학의 연구는 다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뿐입니다.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들은, 자연의 익숙한 풍경에서 예증을 끌어내시고 단순하게 가르치심으로 청중들의 마음에 보다 깊은 감명을 주셨던 크신 교사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새들, 골짜기에 피어 있는 꽃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 자라나는 곡식, 불모의 땅,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저녁놀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데 사용하신 매개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창조주의 사역을 그분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말씀과 연결시키셨으므로, 사람들의 눈에 이 대상물이 나타날 때에는 언제든지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께서 그것들과 연결시킨 진리의 교훈을 회상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계시의 페이지에 나타난 하나님의 흔적은 높은 산과 비옥한 골짜기와 넓고 깊은 대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사물은 창조주의 사랑을 인류에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무수한 증거로 우리를 그분과 연결시키셨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슬픔과 비애뿐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라는 문구는 방싯방싯 피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족 싹트는 풀 잎사귀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죄의 저주는 세상에 가시덩굴과 엉겅퀴를 가져왔으나 엉겅퀴에도 꽃이 피고 가시덩굴에도 장미꽃이 덮입니다. 자연의 삼라만상은 우리 하나님의 인정 있고 자부적(慈父的)인 권고와 그 자녀를 행복하게 하시려는 그분의 희망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금지와 명령은 단지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시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고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참된 신앙생활의 열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 3:14)

종교가 이 세상에서 건강이나 행복에 공헌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가장 해로운 오류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낸”(잠 19:23)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 34:12~14). 지혜의 말씀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 4:22).
참된 신앙생활은 인류를 육체적 · 지적 ·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시킵니다. 신앙은 자제와 침착과 절제를 가르칩니다. 종교는 마음을 고상하게 하고 취미를 세련되게 하고 판단을 성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영혼들로 하늘의 순결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지배하시는 섭리에 대한 신앙은 걱정과 근심의 짐을 덜어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최고의 행운에서나 최악의 불운에서도 마음을 기쁨과 만족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은 직접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을 연장하고 그 모든 축복의 기쁨을 증대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혼들에게 무진장한 행복의 샘을 열어 주는 것이지요. 오늘날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은 모든 사람이 저희 스스로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그는 자기의 영혼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히고 자신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아시고 그의 피조물들의 행복을 위하여 계획하시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길에서는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범죄의 길은 비애와 멸망으로 인도하나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3:17).

 

 

3. 노동의 의미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인간의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체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강하고 잘 조화된 품성을 얻기 위하여 지적 · 육체적 능력을 행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경이로운 신체 조직을 다루고 이를 건강하게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시대에서처럼 지금도 모든 청년들은 실생활의 의무들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각자는 어떤 분야의 수공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할 것이며 만일 필요한 경우에는 그것으로 저희 생계를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활의 보호책일 뿐 아니라 육체적·지적·도덕적 발전에 필요한 것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공에 의지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자들까지도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육체적 노동 없이는 건전한 신체와 활력이 넘치는 건강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규칙적인 노동으로 단련하는 것은 강하고 활동적인 지력과 고상한 품성을 얻는 데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이 매일 얼마의 시간을 노동에 바칠 때 근면의 습관이 형성되고 독립 정신이 촉진되는 반면 게으름으로 일어나는 악하고 부패한 행위에서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의 근본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며 활동과 근면과 순결을 촉진시킴으로 우리는 창조주와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청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게 하신 창조의 목적을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신 부드러운 사랑과 현세의 훈련으로 그것을 얻기 위해 준비해야 할 높은 운명, 즉 저희를 불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그 고상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청년들은 수치심과 혐오감을 가지고 저희가 이제까지 열중하던 저열하고 이기적인 목적과 천박한 향락에서 돌아설 것입니다.

 

 

4. 신정정치에 대한 불만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호 13:10)

이스라엘 정부는 하나님의 성호와 하나님의 권위로 다스려졌습니다. 모세와 70인 장로들과 관원들과 사사(士師)들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집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각 시대를 통하여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백성들을 가르치고 율법을 집행하도록 파송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으나 국가의 기초가 되는 원칙들을 변경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국가의 원수로 인정해야 하고 그분의 율법을 지상의 최고의 법으로서 실행해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음에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에 신정 정치(神政政治)의 원칙을 인정하였고 온 국민이 여호수아의 통치 하에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다른 민족들과 교제함으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백성들은 이웃 이교도들의 많은 습관을 모방함으로 저희 자신들의 독특하고 거룩한 특성을 대부분 희생하였고, 점차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리고 그분의 선민이 된 영예를 존중히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방 군주들이 과시하는 화려함에 매력을 느낀 그들은 자신들의 단순함에 싫증을 느끼고 각 지파들 사이에는 질투와 시기심이 샘솟듯 했으며 내부의 분쟁은 그들을 약하게 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이방 원수들의 침략을 당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열국 중에서 저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지파들이 강한 중앙 정부 하에 연합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길에서 떠나갈 때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군주에 대한 요구가 온 이스라엘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그들이 찰 차꼬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들이 마실 복수의 잔을 스스로 채웠습니다.

 

 

5. 왕을 요구함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

여호수아 시대 이래 사무엘의 통치 시대처럼 그렇게 큰 지혜로 성공적인 정치를 하던 때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이란 삼중 직분을 하나님께 받고 백성의 행복을 위하여 끈기 있고 사심이 없이 열심히 노력하여 그 나라를 그의 현명한 통치 하에서 번영하게 만들었습니다. 질서가 회복되고 경건이 증진되어 한동안 불만의 정신이 저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사무엘은 연로하여 정치적 책임을 다른 사람과 분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두 아들을 임명하여 그를 보좌하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라마에서 그의 직무를 계속하는 한편 이 청년들은 브엘세바에 주재하여 그 나라의 남방 변경 근처에 있는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관원들은 의롭게 재판하고 과부와 고아를 공정하게 다루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특별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삼상 8:3)였습니다. 그들은 저희 아버지의 순결하고 무아적인 생애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엘리에게 주어진 경고는 사무엘의 마음에 충분한 감화를 끼치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느 정도 아들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방임하였으므로 그 결과가 그들의 품성과 생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사들의 비행은 많은 불만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핑계 삼아 오랫동안 은밀히 갈망하던 변화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백성 중에 있는 수많은 사악한 사건들은 사무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만일 그의 아들들의 악한 행위를 알았더라면 사무엘은 지체 없이 그들을 해임시켰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들의 진정한 동기가 불만과 교만심에 있었으며 그들의 요구는 계획적이고 단호한 목적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의 감정을 나타내거나 책망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기도로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

 

 

6. 패역한 백성들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 8:7,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백성들은 사무엘에 대하여 무례함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관원들을 임명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무례함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충실한 종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자들은 단순히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무시를 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책망과 권고였으며 거절당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최대의 번영을 누리던 시대는 저희가 여호와를 저희 왕으로 승인하던 시대, 곧 그분께서 세우신 율법과 정사를 다른 모든 민족의 그것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감으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시고자 하신 백성이 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죄와 어리석음의 결과로 이르러 온 모든 재해를 하나님의 정치의 잘못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하여 이처럼 완전히 눈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왕의 통치를 받으리라고 예언하셨으나 이 정치 형태가 이스라엘에게 가장 좋은 것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선택을 따르도록 허락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권고를 거절한 까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지 않고 그분께서 나타내신 뜻과 반대되는 데도 불구하고 저들의 마음대로 하고자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들의 원하는 바를 허락하심으로 뒤따르는 쓰라린 경험을 맛보게 하여 그들로 저희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그 결과 인간의 교만과 지혜는 위험한 안내자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마음의 욕망은 결국 축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것이 판명될 것입니다.

 

 

7. 거룩한 나라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였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신 10:1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입법자와 능력의 근원으로서 백성들이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은 끊임없이 더욱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 인간의 힘을 더 의지하고 저희 왕의 과오는 그들로 죄에 빠지게 하고 그 민족을 하나님과 분리시킬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들의 요구를 허락하되 여호와께서 찬성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경고하라고 지시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삼상 8:19, 20)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열방과 같이” 되고자 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민족들과 같지 아니한 바로 그 점이 그들의 특별한 특권과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른 모든 백성과 분리시켜서 그들을 그분의 특별한 보배로 삼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높은 영예를 무시하고 이방인의 모본을 따르기를 그처럼 열렬히 갈망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는 세상 사람들의 습관과 풍속을 따르고자 갈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속인들과 연합하고 그들의 풍속을 따름으로 불신자들에게 큰 감화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길을 따르는 자들은 누구나 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벗이 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영예 때문에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을 희생하는 것입니다(벧전 2:9 참조).

 

 

8. 경건한 자가 받는 핍박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사무엘의 순결한 생애와 무아적 헌신은 이기적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는 물론 거만하고 음탕한 이스라엘 군중에게도 끊임없는 견책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화려하게 몸을 단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는 사역에는 하늘의 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그분의 지도를 받아 히브리 민족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경건과 헌신에 싫증을 느끼고 그의 겸손한 권위를 멸시하고 저희를 다스릴 왕을 구함으로 그를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성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같은 점이 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구세주의 생애의 순결이었습니다. 그 생애는 세상의 빛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는 부패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은 경건하다고 공언하면서도 성실치 못한 자들의 가장 격렬한 감정을 자극해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부와 명예를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으나 그분께서 행하신 사역은 그분이 이 세상의 어떠한 군주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압박자의 멍에를 꺾어 줄 메시아를 바라고 있었으나 저희 목에는 죄악의 멍에가 메어 있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덮어 주시고 그들의 거짓된 경건을 칭찬하셨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저희 왕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 죄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담한 책망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비와 순결과 거룩함만을 지니시고, 죄악 외에는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은 아름다운 품성을 멸시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러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온 빛은 그 빛 가운데 행하기를 거절하는 자들 모두를 정죄합니다. 위선자들은 죄를 미워하는 자들의 모본으로 견책을 받을 때에 사탄의 대리자가 되어 충실한 자들을 괴롭히고 박해할 것입니다.

 

 

9. 사울의 용모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 6:2)

이스라엘의 정치가 군주 정치 형태로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왕을 선택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셨고 히브리인들도 왕의 선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정도로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므로 베냐민 지파의 기스의 아들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장차 왕이 될 사울의 용모는 왕을 갈망하던 자들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킬 만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삼상 9:2)었으며 고상하고 존귀한 태도와 혈기 왕성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키가 큰 사울은 존경을 받을 자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사울은 이와 같은 매력적인 외적 용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참된 지혜로 구성된 보다 높은 자질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청년기에 그의 조급하고 격렬한 감정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혜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도 전혀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권세 있고 부유한 두령의 아들이었으나 소박한 그 당시의 형편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농부의 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가축 얼마가 산에서 길을 잃었으므로 사울은 한 사환을 데리고 그것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들이 성읍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물 길러 나오는 몇 명의 소녀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선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통치 하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에는 성소에서 드리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삼상 2:17)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 나라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행해지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종교적 예배에 관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성막에서 드리는 봉사가 없었기 때문에 제사는 당분간 다른 곳에서 드렸는데 백성들이 교훈을 얻으려고 자주 가던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성읍이 이 목적을 위하여 선정되었습니다. 이 성읍들 중 가장 높은 곳을 흔히 제사드리는 곳으로 선택한 고로 그곳을 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10.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사울은 성문에서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함을 입을 자가 친히 그의 앞에 나타나리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서로 마주 섰을 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삼상 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잃어버린 가축들을 찾았으니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잔치에 참석하라고 강권하고, 그때에 그의 앞에 놓인 큰 운명에 대하여 알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의 마음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떨었습니다. 사울은 그 말의 뜻을 얼마만큼 눈치챌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에 대한 요구가 온 국민의 가장 열렬한 관심을 끄는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삼상 9:21)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그 마을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인 회집 장소로 이 낯선 사람을 인도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지도를 따라 그들 중에 제일 좋은 좌석이 사울에게 주어졌고 잔칫상에서는 제일 좋은 부분을 그의 앞에 배설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그의 객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와 다락방에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를 세울 대원칙들을 그에게 설명해 주어 그로 하여금 어느 정도 그의 높은 신분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사울이 떠날 때에 선지자도 그와 함께 나갔습니다. 선지자는 성읍을 지나자 사환에게는 앞으로 가라고 명하고 사울에게 잠깐 서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지를 받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6, 7)고 말하였습니다.

 

 

11. 하나님의 은사와 선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사울이 그의 길을 갈 때에 선지자가 말한바 모든 일이 성취되었습니다. 사울이 베냐민의 변경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잃었던 짐승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볼 평원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제사드릴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다른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셋째 사람은 희생의 잔치에 쓸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에게 예법대로 인사를 하고 또 그에게 떡 세 덩이 중에서 두 덩이를 선사하였습니다. 그의 성읍 기브아에서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으로부터 돌아오면서 저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의 곡조에 맞추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들에게 접근할 때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여 그들과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사울이 매우 유창하고 지혜롭게 말하고 매우 열렬히 예배에 참석함으로 그를 알던 자들이 놀라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삼상 10:11)고 외쳤습니다.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그들의 예배에 참가하고 있을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순결과 성결의 빛은 타고난 마음의 어둠을 비추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그는 성결의 미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죄와 사탄을 대항하는 싸움을 시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 싸움에 있어서 그의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전에는 희미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보이던 구속의 경륜을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높은 신분을 위하여 그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힘과 은혜의 근원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의 요구와 자신의 의무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그의 이해력을 계발시켜 주셨습니다.

 

 

12. 왕이 된 사울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서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은 사실은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제비를 뽑아서 공공연하게 나타내어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 목적을 위하여 백성들을 미스바로 소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기 위하여 기도를 드린 후에 제비를 뽑는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드디어 기스의 아들 사울이 선택된 사람으로 지명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알리고 군주 정치의 기초가 되고 그것을 지배할 원칙들을 말하였습니다. 왕은 독재 군주가 되지 말아야 하고 그의 권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였습니다. 비록 국민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멸시했을지라도 이 충성스러운 선지자는 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자유를 할 수 있는 대로 보호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사울을 저희 왕으로 인정하였으나 한 큰 무리가 반대하였습니다. 가장 강대한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자기들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에서 왕을 뽑아낸 일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울에게 충성을 다짐하지도 않았고 관습상의 선물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열렬히 왕을 요구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각 당파에서는 저희가 보좌에 앉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지도자 중에 여러 사람은 자기가 그 명예를 갈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심이 불타올랐으며 교만과 야심에 찬 노력이 결국 실망과 불만을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에서 사울은 전과 같이 정사를 사무엘에게 맡기고 기브아로 돌아갔습니다. 사울은 그의 왕권을 힘으로 유지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냐민 고원 중에 있는 그의 집에서 조용히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그의 권위의 확립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13. 사울의 활약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사울을 왕으로 임명한 지 얼마 후에 나하스의 통치 아래 있는 암몬 사람들이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지파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길르앗 야베스 성읍을 위협하였습니다. 그 거민들은 암몬 사람들에게 조공을 드려서 화평을 얻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잔인한 왕은 주민들의 오른쪽 눈을 빼어 그들을 자기의 능력의 영원한 증거로 삼는 조건 외에는 동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포위당한 성읍 백성들은 7일간의 유예(猶豫) 기간을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저희가 기대하는 승리의 영예를 더 높이려는 생각으로 이 제안에 동의하였습니다. 야베스에서 파송된 사자들은 즉시 요단 건너편에 있는 지파들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자들이 기브아에 그 소식을 전하니 공포심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밤에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다가 어떤 무서운 재난을 예고하는 큰 울림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때에 숨어 있던 그의 모든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삼상 11:6) 사울은 “소 두 마리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쫓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삼상 11:7) 하였습니다.
33만 명이 사울의 명령 아래 베섹 평원에 모였습니다. 즉시 사자들을 포위된 성읍에 보내어 내일 그들을 도와주고 그날에 암몬 사람이 복종할 것이라는 보증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신속한 야간 행군으로 사울과 그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 새벽에 야베스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울은 기드온처럼 그의 군대를 세 부대로 나누어 암몬 사람이 위험을 느끼지도 않고 아무 방비도 없는 이른 아침에 그들의 진영을 공격하였습니다. 공포에 싸여 그들이 패주한 후에는 큰 살육이 뒤따랐습니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삼상 11:11).

 

 

14. 사울의 변화된 성품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시 44:6)

사울의 신속성과 용맹은 그처럼 큰 군대를 성공적으로 지도한 통솔력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망하던 군주, 곧 그들을 다른 민족과 싸워 이기게 할 군주가 갖춰야 할 자격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사울을 저희 왕으로 환영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이 없었다면 그들의 모든 노력이 헛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간 대리자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열광적으로 사울을 환영한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사울의 권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자들을 죽이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말리면서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삼상 11:13)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성품이 변화되었다는 증거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영예를 취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복수의 정신을 나타내는 대신에 그는 동정과 용서의 정신을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속에 거하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길갈에서 거국적 회집을 열어 나라를 정식으로 사울에게 주자고 제의하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최초에 진을 친 곳이었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두 개의 돌로 돌단을 세운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할례를 새로 거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에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황야에 체류하게 된 후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킨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나”가 그쳤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자신을 이스라엘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나타내셨습니다. 이곳으로부터 그들은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아이를 정복하기 위하여 행진했었습니다. 여기서 아간은 자기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고, 또한 여기서 기브온 사람과 조약을 맺으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는 일을 태만히 한 데 대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15. 사무엘의 고별사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벧전 5:2)

연로한 선지자 사무엘은 민족의 통치자로서 그의 고별사를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삼상 12:1~3)고 말하였습니다.
백성들은 한결같은 음성으로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삼상 12:4)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단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왕과 백성 모두가 따라야 할 원칙들을 천명하였고 자신의 모본으로 그의 말의 무게를 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하나님의 사업에 관계하였고 그의 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가지 목적,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스라엘의 최대의 행복을 위하는 일만이 항상 그의 앞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영에 대한 희망을 갖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인도함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죄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국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그분의 사역을 옹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은 참 평화를 찾기 전에 저희가 범한 바로 그 죄를 알고 자복해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왕을 요구하는 목적을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20)고 선언했었습니다.

 

 

16. 오직 여호와를 섬기라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합 2:18)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날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또 사무엘은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삼상 12:16, 17)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뉴월 맥추 때에 동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절에 돌연한 폭풍우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공포에 싸이게 하였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겸비하여 저희 죄, 곧 저희가 범한 바로 그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삼상 12:19).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을 낙망 상태에 버려두지 아니하였으니 낙망은 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막아 버리는 까닭이었습니다. 사탄은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치 않는 분으로 보게 하여 그들로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지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시며 항상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을 통하여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아니하실 것이”(삼상 12:20~22)라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당해왔었던 경멸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그의 한 평생의 헌신에 보답하지 않은 배은망덕에 대하여 조금도 꾸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들에 대한 자기의 끊임없는 관심을 그들에게 보증하였습니다.

 

 

17. 안일한 정신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 19:15)

길갈의 집회 후에 사울은 암몬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소집한 군사들 중에서, 믹마스에 주둔한 자기 휘하의 군사 2천 명과 기브아에 주둔한 그의 아들 요나단을 따르는 군사 일천 명을 남겨 두고 모두 해산시켰습니다. 여기서 그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했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최근의 승리로 희망이 넘치고 용맹이 충천해 있었으므로, 만일 사울이 즉시 이스라엘의 다른 원수들을 대항하여 진격했더라면 국가의 자유를 위해 눈부신 타격을 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에 이스라엘의 호전적 이웃인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에벤에셀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여러 산성들을 계속 점유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그들이 나라의 중심부에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시설과 무기와 장비에 있어서 이스라엘보다 훨씬 우수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오랜 압박 통치 기간 동안 자기들의 세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대장간 영업을 금지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여전히 필요되는 대장간 일을 위해서는 블레셋 사람의 주둔지로 가곤 했습니다. 안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오랜 압박으로 비굴해진 정신의 지배를 받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에 필요한 무기 준비를 게을리했습니다. 전쟁에는 활과 물매(投石器)가 쓰였는데 이것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가질 수 있었으나 창과 칼은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아무도 가진 이가 없었습니다. 사울의 치세 제2년에 비로소 블레셋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최초의 공격은 왕의 아들 요나단이 시작하였는데 그는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쳐서 함락시켰습니다.
이 패배로 격분한 블레셋 사람들은 즉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할 준비를 했으며 이에 응해 사울도 나팔을 불어 각처에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요단 건너편 지파들을 포함해서 모든 지파의 군사들을 길갈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18.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블레셋 사람들도 믹마스에 거대한 군사들을 모았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삼상 13:5)았습니다. 이 소식이 길갈에 있는 사울과 그 군사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백성들은 저희가 대항해서 싸워야 할 그 강력한 군대들을 생각하고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들은 원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전투 준비 검열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했고 다른 사람들은 굴과 웅덩이와 그 지역에 흔한 바위 틈에 숨었습니다. 싸울 시간이 가까워지자 탈주자들의 수효는 급격히 늘어났고 대오를 벗어나지 않은 자들도 불길한 예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사울이 맨 처음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 사무엘로부터 이때에 행하여야 할 방법에 대하여 분명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삼상 10:8)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들을 격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고취시키는 결정적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기다리기만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정한 기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그 지체에 조바심을 느끼고 그를 에워싸고 있는 괴로운 환경에 스스로 낙담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거행할 그 예배에 대하여 백성들이 준비하도록 충실히 노력하는 대신에 불신과 불길한 예감에 빠졌습니다. 제사로 하나님을 찾는 일은 매우 엄숙하고 중대한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이 그분 앞에 가납되고, 원수를 정복하려는 저들의 노력에 그분의 축복이 같이할 수 있도록, 그분의 백성이 저희 마음을 살피고 죄를 회개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참을성이 없었고, 백성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대신에 저희를 인도하고 지도하도록 선택한 왕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9. 시험 앞에 선 사울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 37:7)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셨고, 만일 연약한 인간의 힘만 의지했더라면 그들에게 닥쳐왔을 그런 재난에 빠지도록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아슬아슬한 곳으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간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들의 유일의 조력자이신 그분께로 나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울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인내로 기다리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나타내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택한 왕이 만왕의 통치자에게 귀를 기울일 것인지, 또 그가 겁이 많은 그의 군사들로 하여금 영원한 힘과 구원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주목하도록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조바심을 가지고 사무엘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의 군사의 혼란과 낙담과 이탈을 선지자가 빨리 오지 않는 탓으로 돌렸습니다. 정한 시간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즉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분의 종을 지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침착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정신은 더 이상 억제될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공포심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느낀 사울은 종교 집회를 열어 제사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직무를 위하여 성별된 자만이 그분 앞에 제사를 드리도록 명하셨으나 사울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가진 채 제단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이런 위기를 당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성취했더라면 여호와께서는 경이로운 구원을 이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매우 만족하게 여겼으므로 책망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처럼 선지자를 만나러 나아갔습니다.

 

 

20. 믿음과 순종

“내가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시 89:19)

이스라엘은 군주 정치의 기초가 되는 원칙들을 유지하고 온 민족이 하나님의 능력의 지배를 받아야 하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인간의 세속적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셨을 것입니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벽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사에 하나님의 최상권을 인정하지 않고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군주 정치가 번성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이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요구를 존중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그의 실수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의 대리자가 되기에 부적당하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것이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의지가 지배적인 능력이 될 것이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충실했더라면 그의 나라가 영원히 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실패한 이상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 어떤 큰 이익과 연계(連繫)가 되어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길 외에는 안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믿음과 순종을 조건으로 주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성경에 제시된 수많은 약속들이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 감정을 따르거나 사람들의 판단을 의지하지 말고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확한 계명을 따라 행할 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순종함으로 어떠한 어려운 사태에서도 우리가 그분의 뜻을 수행하고, 그분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백성들을 복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실 수 있음을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 완고함의 결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 50:15)

사울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입었으나 회개를 통해 그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자 하지 않고 자신의 참된 경건의 부족을 종교적 형식에 대한 열심으로 메우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홉니와 비느하스가 진영으로 가져왔을 때 이스라엘이 패배한 사실을 사울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는 거룩한 궤와 수행하는 제사장을 데려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신뢰심을 고취시켜서 흩어진 군대를 다시 모아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그를 후원해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모든 것을 실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선지자의 반갑지 않은 비난과 책망을 듣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사울의 이해력을 계발하고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고 그에게 성령이 허락되었고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충실한 교훈과 책망을 받았지만, 그의 완고함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생애는 유년 시절의 나쁜 습관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는 슬픈 실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어렸을 때 복종하도록 교육받지 못하고 자란 그의 성급한 정신이 계속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하나님의 뜻을 거룩히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품고 맡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자들은 후세에 보다 높은 봉사를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주신 능력을 악용한다면 나중에 갑자기 그것을 고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을 분기시키고자 한 사울의 노력이 헛수고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사울은 그의 군대가 6백 명으로 줄어든 것을 보고 길갈을 떠나 최근 블레셋 사람에게서 취한 게바에 있는 요새로 물러갔습니다. 이 요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수 마일 떨어진 깊고도 험준한 계곡의 남쪽에 있었습니다. 같은 계곡 북쪽 믹마스에는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분견대(分遣隊)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마을을 약탈하였습니다.

 

 

22.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슥 8:23)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완고함을 꾸짖으시고 그분의 백성에게 겸손과 신앙의 공과를 가르치고자 사태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외람되이 제물을 드린 사울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사람을 정복하는 명예를 사울에게 주지 않으시고 대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왕의 아들 요나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의 병기 든 자에게 원수의 진을 은밀히 공격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는 강권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고 하였습니다.
역시 신앙과 기도의 사람인 병기 든 자도 그 계획을 격려하였고, 그들은 함께 저희 계획이 반대를 당하지 않도록 비밀리에 진영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은 저희 조상의 인도자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함으로써 저희가 어떻게 진격해 나가야 할지를 결정케 해주는 표징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 후에 두 군대를 가로막은 계곡으로 내려가 절벽의 그늘과 골짜기의 언덕과 꼭대기로 일부분이 가려져 있는 길을 조용히 이리저리 헤치며 나아갔습니다. 블레셋 인의 요새에 접근하여 저희 원수들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에, 원수들은 비웃으면서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여 주겠다며 그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겁 없이 접근한 두 이스라엘 사람을 처형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도전은 요나단과 그의 동료가 여호와께서 그들의 계획을 성공시키시리라는 증거로서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표징이었습니다. 이 용사들은 이제 블레셋 사람이 보이는 곳을 지나 은밀하고 어려운 길을 택하여, 그들이 올라오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비를 소홀히 하고 있는 낭떠러지의 꼭대기로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의 진영에 침투하여 파수병들을 죽였는데 이 파수병들은 너무나 놀라고 무서워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23.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자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 3)

요나단이 블레셋을 급습했을 때, 하늘의 천사들은 요나단과 그 수행원을 보호하고 그들 곁에서 싸웠으므로 마치 기병과 병거와 함께 대군중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땅이 진동하였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표적들을 인정하였고, 블레셋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들에 있는 자나 진영에 있는 자가 모두 큰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블레셋 사람은 혼란 중에 아군을 원수로 착각하고 서로 살육하였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이 격퇴당하는 것을 보고 군대를 인솔하여 공격에 가담했으며 전에 원수에게로 도망하였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이켜 원수를 대항하고 큰 무리가 숨었던 곳에서 나왔으며 블레셋인이 패주할 때 사울의 군사는 도주자들에게 무서운 살육을 가했습니다.
기회를 가장 잘 이용하기로 결심한 왕은 온종일 음식을 먹지 않도록 분별없이 그의 병사들에게 금령을 내렸습니다.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삼상 14:24)라는 엄숙한 저주로써 그의 명령을 강행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알리거나 그의 협력을 얻지 않고도 승리는 이미 얻어진 것이었으나 사울은 정복된 원수의 군대를 완전히 멸망시킴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음식을 먹지 말라고 금한 명령은 이기적 야심에서 나왔으며, 이 명령은 백성의 필요가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과 저촉될 때에 왕은 백성의 필요에 대하여 무관심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엄숙한 맹세로 이 금령을 굳게 한 것은 사울의 성급하고 야비함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바로 그 저주의 말은 사울의 열심이 자신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사울은 그의 목적이 “여호와께서 당신의 원수에게 복수하시는 것”이라 하지 않고 “내가 내 원수에게 복수하는”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24. 질투의 결과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행 27:34)

사울의 이 이기적인 금령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백성들은 하루 종일 전쟁에 참가했기 때문에 배가 고프고 힘이 없었으므로, 금지했던 시간이 지나자마자 탈취한 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피 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피를 먹지 못하게 금한 법을 범하였습니다. 그날의 전쟁 동안에 왕의 명령을 듣지 못한 요나단은 수풀을 지나다가 꿀을 조금 먹음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명령을 범하였습니다. 사울은 저녁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그 칙령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요나단이 짐짓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그를 통하여 큰 구원을 이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형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살려 둔다는 것은 그가 그처럼 조급히 맹세함으로 범죄 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승리의 명예를 자기에게 돌릴 수 없었으나 그는 맹세의 신성성을 지키려는 그의 열심으로 존경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신하들에게 왕의 권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시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사울은 길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제사장처럼 제물을 드리는 일을 감행하였고 사무엘이 책망할 때에 그는 완고하게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의 명령을 불순종했을 때, 비록 그 명령이 비합리적이며 또 알지 못하고 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왕은 그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형의 집행을 거절하며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을 죽이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리이다”(삼상 14:45)고 말하였습니다. 거만한 군주도 감히 이 같은 백성들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요나단은 생명을 건졌습니다.

 

 

25. 비판의 정신을 가진 자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사울은 그의 아들이 자기보다 백성들과 여호와께 더 호감을 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요나단의 구원은 왕의 조급함에 대한 신랄한 책망이었습니다. 사울은 그의 저주가 자신의 머리로 돌아오리라는 예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을 중단하고 침울하고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 된 행위를 변명하거나 핑계하기를 몹시 좋아하는 자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 가장 신랄한 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사울처럼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자초해 놓고도 권고를 거절하고 책망을 경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지 않음을 확실히 알면서도 고통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자랑하는 정신을 품는 한편 저희보다 나은 자들을 잔인하게 판단하고 맹렬하게 비판합니다. 흔히 자신을 높이려고 애쓰는 자들은 그들의 숨은 성격이 나타나는 그런 처지에 서게 되는데, 사울의 경우에도 그러했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행위로써 그에게는 왕의 명예와 권위가 공의와 은혜와 자비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정치를 거역한 과오가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로써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었던 경건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저주가 내리도록 도모한 왕과 바꾸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나단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구원자 요나단은 왕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불순종을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저희 죄를 알고 회개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뜻을 무시하고 그의 경고를 멸시하는 자들을 번영하도록 놔두시는 것처럼 보이나 그분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면 분명히 그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26.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

사울이 길갈의 어려운 처지에서 믿음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욕되게 하였으나 그의 과오는 전혀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그분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신앙과 그분의 명령을 순종해야 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다른 기회를 허락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사울은 길갈에서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그가 행한 행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그는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끼고 자기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기의 잘못을 변명하였습니다. 그때 후로 사울은 선지자와 거의 교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자기의 아들처럼 사랑하였으며 성질이 대담하고 격렬한 사울도 사무엘을 몹시 존경하였으나 그의 책망에 분노하여 그때부터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다른 메시지를 주어 사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사울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성실성과 이스라엘 앞에서 행할 그의 유용성을 아직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왕에게 나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그 명령에 주의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왕이 되도록 부르신 동일한 권위로 말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했습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2, 3)고 하였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광야에서 제일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걸어온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와 아울러 그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비열한 우상숭배에 빠진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형벌을 선고하셨습니다.

 

 

27.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잔인하게 행한 역사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선고의 집행을 4백 년 동안 연기하였으나 아말렉 사람들은 저희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사악한 백성들이 할 수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그분의 백성과 그분께 드리는 예배를 말살하고자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그처럼 오랫동안 지체된 형벌을 집행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악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담대하게 죄를 행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형벌은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더 확실하고 더 무서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사 28:21). 그러나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형벌하는 일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고…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출 34:6, 7)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복수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는, 지상의 거민들을 완전한 타락과 파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려야만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나 1:3). 여호와께서는 정의를 위하여 짓밟힌 그분의 율법의 권위를 무섭게 옹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어쩔 수 없어서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분의 형벌을 초래한 죄가 얼마나 크고, 범죄자를 기다리고 있는 보응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28. 교만과 탐욕에 빠진 사울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9)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들을 멸하는 마당에서도 그들 중에 거하는 겐 사람을 구하심으로 형벌 중에도 자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들은 완전하게 우상숭배를 버리지도 않았으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었고 이스라엘과 친한 자들이었습니다.
사울은 믹마스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패배시킨 이후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 아말렉과 블레셋으로 더불어 전쟁을 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새로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라는 사명을 받자 사울은 즉시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사울 자신의 권위에 선지자의 권위가 첨가되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나오라는 부름을 듣고 그의 깃발 아래 운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원정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의 목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의 영예나 원수의 노획물이나 아무것도 취하지 말아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로써 참전해야 하였으니, 이는 아말렉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하는 것이 그 목적인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 그분의 주권을 모독한 그 백성들의 운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저희가 멸시하던 바로 그 백성에게 멸망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말렉 사람을 이긴 이번 승리는 사울이 이제까지 얻은 승리 중 가장 빛나는 승리였고, 이것은 그의 최대의 위험인 교만심을 다시 불붙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완전히 멸하라는 거룩한 칙령은 부분적으로만 성취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을 사로잡아 오는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풍습을 모방하여 승리의 영예를 높이려는 야심으로 사납고도 호전적인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 두었습니다. 백성들은 양 떼와 소떼와 짐 나르는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살려서 남겨 두고, 이 짐승들은 여호와께 제물로 드리려고 남겨 두었다는 구실로써 저희 죄를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그것들을 자신들의 가축을 아끼기 위한 대용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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