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70호 매일의 만나

270호 매일의 만나

 

1. 송년사

사랑하는 열한시교회 성도님과 교회를 내 몸처럼 돌보는 사역자 여러분, 손계문 목사 인사드립니다.
열한시 성도분들과 지내온 한 해는 정말 행복하고 고마웠습니다. 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이끌어온 새벽줌 성도님들, 수요줌과 매일 저녁 각 셀 모임에 함께 해 온 성도님들의 나눔과 소통이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풍부했고 그로 인해 하늘의 은총이 가득했던 한 해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면서 행복한 순간들을 꼽으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일입니다. 새싹이 파릇파릇 열리는 봄 향기를 맡으며 걷는 길도 좋고, 시원한 여름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길도 좋고, 낙엽이 곱게 물든 석양녘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눈 덮인 산길을 소복소복 조심스레 걸으며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 시간들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통하는 벗도 좋고, 자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고난의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부부라면 아무 말 없이 걸어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주인이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 주님과 함께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성경은 이러한 산책길입니다. 아니 성경은 숲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밀림이며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다 찾아낼 수 없는 원시림입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생각의 오솔길이 있고, 바라만 봐도 황홀해지는 아름다운 길이 있고, 조금만 맛을 봐도 감미로운 과실들이 길가에 가득합니다.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가 다르며, 어떤 때는 매서운 책망의 말씀이 어떤 때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2021년 그 숲길을 잘 걸어오셨나요? 이 숲에서 들꽃의 향기를 맡고, 과실로 배부르셨는지요? 은혜와 감격의 설렘을 모아 꽃병에 꽂아보았는지요? 한 해 동안 주님과 나누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도란도란 그 정겨운 길을 함께 거닐던 기억을 가슴 깊이 새겨 넣고,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뜨겁고 가슴 벅찬 감사를 마음껏 드리도록 합시다.
여러분과 함께여서 감사합니다.

 

2. 하나님의 원칙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주신 현세의 축복을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매우 열렬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주의 목적이 아닙니다. 상태의 다양성은 하나님께서 성품을 향상시키시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계획하신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하여 써야 할 자금을 위탁받은 그분의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분은 고통 당하는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주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은 그분의 자녀들을 동정하시며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을 대표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주께서는 고통과 압박 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느끼시는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각성시키려고 우리 가운데 그들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베푼 동정과 자비심을 마치 그분 자신에게 베푼 것처럼 받으십니다. 그들에게 잔인하게 대한 행위나 등한히 한 행동은 마치 그리스도께 행한 것처럼 간주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을 계속 지켰더라면 현재 세상의 상태는 도덕적·영적·물질적 면에 있어서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요! 이기심과 자존심은 지금처럼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각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복리를 위하여 친절히 염려하는 마음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와 같은 광범위한 빈곤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원칙들은 각 시대를 통하여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가난한 자가 부자를 의심하고 증오한 결과로 일어나는 무서운 악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원칙들은 지금 무질서와 유혈로 세상을 채우려고 위협하는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줄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절기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4)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서 예배하기 위하여 연중 세 번 모였는데(출 23:14~16), 실로가 한동안 이러한 집회의 장소였으나 그 후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어 각 지파는 절기들을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 회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노리고 있는 사나운 호전 족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나 매년 세 번씩 모든 강건한 장정들과, 여행할 수 있는 백성들은 모두 그들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 거의 중앙에 있는 집회 장소에 모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보호자가 되시리라는 허락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하러 올라가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원수들을 제어하실 것입니다.
최초의 절기는 유월절, 곧 무교절인데 유대력의 첫 달인 아빕월로, 추운 겨울도 지나고 늦은 비도 끝이 난 지금의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에 해당하는 이때는 만물이 춘계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 각처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산에서는 목부들이, 갈릴리 바다에서는 어부들이, 들에서는 농부가, 거룩한 학교에서는 선지자의 생도들과 같은 순례자의 대열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나는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향하였습니다.
초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표상적인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광야 생활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수확의 절기로서 땅의 열매의 수확을 경축하고, “추수하는 주인”께서 가라지를 모아 불태우고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습니다. 그때에 악인들은 “본래 없던 것같이”(욥 16) 될 것이며 온 우주의 모든 음성이 합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초막절에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의 순례 생활 동안 친절히 돌보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고 그분을 찬양하였습니다.

 

4. 절기의 목적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이 연례 회집은 노인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섬기도록 격려하는 한편 그 땅의 각처에서 온 백성들의 회합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유대와 상호 간의 연합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도 초막절과 같이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념한 것처럼 우리도 그분께서 이 세상과 흑암의 오류에서 우리를 당신의 은혜와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여러 방법을 감사하며 회상해야 합니다.
성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자들은 매년 한 달 이상을 연중 절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바쳐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이 같은 모본은 종교적 예배의 중요성과 우리의 이기적, 세속적 이익을 영적이요 영원한 이익 아래 종속시켜야 할 필요를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서로 굳게 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특권을 게을리할 때에 우리는 커다란 손실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와 중대성을 잃고, 우리의 마음이 그것의 성화시키는 감화로 계발되고 부흥되기를 멈추고, 영적으로 퇴보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교제할 때에 서로 간의 동정심이 부족하므로 큰 손실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신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한 아버지의 자녀이며 서로의 행복을 위하여 상호 간에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대속죄일의 의식을 행한 직후에 사죄와 가납하심을 입은 것을 인식하고 기뻐하였으며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롬 8:22) 저주의 속박에서 영원히 구원을 얻어 안전하게 하늘 가나안에 모일 때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즐거움과 충만한 영광 중에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업은 완성되고 인류의 죄는 영원히 도말 될 것입니다.

 

5. 전쟁의 중단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출 23:24, 25)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이미 얻은 영토를 만족히 여겼으므로 그들의 열심은 곧 시들어져서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삿 1:2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언약을 그분 편에서 충실히 이행하셨으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인의 세력을 꺾고 그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보증을 신뢰하고 그 땅의 거민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만이 그들에게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이 일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가나안인들과 동맹을 체결함으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로 가나안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신 조건을 성취시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최초로 교통하신 바로 그때부터 그들에게 우상숭배를 배격하라는 경고를 주시면서 그들이 순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들의 원수를 정복하시겠다는 보증을 주셨습니다.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에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출 23:27~33). 이 명령은 모세가 죽기 전에 그를 통하여 가장 엄숙한 방법으로 반복되었고 또한 여호수아에 의하여 되풀이되었습니다.

 

6. 아, 이스라엘이여

“그 우상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시 106:36)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두신 것은 그들로 도덕적 죄악의 조수를 막아 온 세상에 범람하지 못하게 할 강한 방파제를 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에게 충성하는 한 그들이 나아가 정복하고 또 정복할 수 있게 하고자 하셨으므로 가나안인들보다 더 크고 강력한 족속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숭고한 운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안일과 방종의 길을 택하여 가나안 정복을 완수할 기회를 잃었으며 여러 세대 동안 선지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민 33:55) 리라고 예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남아 있던 우상숭배하는 백성들로부터 압박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시 106:35) 그들은 가나안인들과 잡혼하였고 우상숭배는 염병과 같이 온 땅에 퍼지게 되어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 기업을 미워하”(시 106:37~40)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교훈을 받은 세대가 사라지기까지는 우상숭배가 거의 머리를 들지 못했으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배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가나안을 점령한 자들 편에서 여호와께서 제시하신 바를 무시함으로 여러 세대 동안 계속하여 쓴 열매를 가져올 악의 종자를 심었습니다. 히브리인의 단순한 습관이 그들로 신체상의 건강을 누리게 하였으나 이방인들과 교제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식욕과 정욕에 방종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체력은 점점 감소되고 지적·도덕적 능력은 약화되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로부터 물러가서 그들은 더 이상 저희 원수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힘입어 정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민족들에게 압제를 당하였습니다.

 

7. 사사(士師) 시대의 시작

“여호와께서 사사(士師)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삿 2:16)

이스라엘 백성이 점차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져들면서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시 78:60, 61)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아니하셨습니다. 언제나 여호와께 충실한 남은 무리가 있었으며 때때로 여호와께서는 충실하고 용감한 자들을 일으키셔서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자가 죽을 때에 백성들은 그의 권위에서 풀려나 점차로 그들의 우상에게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타락하여 징계를 받았고 자복하여 구원을 얻는 역사가 거듭거듭 되풀이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왕과 모압 왕, 그 후에는 블레셋인들과 시스라가 인도하는 하솔의 가나안인들이 차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압박하였을 때, 옷니엘과 삼갈, 예후와 드보라와 바락이 그들의 백성의 구원자로 등장하였습니다.
가나안 남쪽에 사는 아말렉인들은 동쪽 변경과 사막 저편의 미디안 족속들과 함께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자비한 원수들이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의 멸망되었으나 그 후에 크게 증가하고 수효도 많아져서 강대하게 됨에 따라 그들은 복수하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차제에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났으므로 기회는 이르러 왔습니다. 그들은 곡식이 익기 시작하면 들어와서 토지의 마지막 소산을 거두기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토지소산을 빼앗고 거민들을 약탈하고 학대한 후에 사막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개활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집들을 버리고 성벽이 있는 성읍으로 모여들거나 성채에서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이 같은 압박이 7 년간 계속된 후에 백성들이 고통 중에서 여호와의 견책에 주의하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8. 여호와 살롬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눅 1:28)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요아스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가문이 소속된 지파는 아무런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요아스의 가족은 용기와 성실에 있어서 탁월하였고 한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디안 사람과의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그 한 아들인 기드온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은 그 때에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은밀한 곳에서 말없이 일하면서 슬픔에 젖어 이스라엘의 상태를 숙고하고 자기 백성에게서 압박자의 멍에를 꺾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때, 돌연히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라고 기드온에게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삿 6:13)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의 사자는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4)고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지금 자기에게 말하는 이가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한 언약의 천사인 표징을 얻고자 갈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더불어 교통한 하나님의 천사들은 한때 머물러 그의 후대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기드온도 이제 하나님의 사자를 그의 손님으로 머물도록 간청하였습니다. 기드온은 급히 장막으로 가서 그의 빈약한 창고에서 염소 새끼 하나와 무교병을 준비하여 하늘의 사자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그를 명하여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삿 6:20)고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그가 바라던 표징이 주어진 바 되었으니 곧 천사가 손에 잡은 지팡이로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반석에서 나와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 후에 기드온이 거기에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삿 6:24)이라 하였습니다.

 

9. 우상의 실체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사 41:23)

기드온은 아버지 요아스가 오브라에 쌓아 논 바알 제단을 훼파하고 그 위에 여호와의 단을 세우고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은 제사장들에게 위임되었고 실로의 제단에서만 드리도록 제한되었지만 의식을 제정하시고 그 모든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를 변경시키실 권한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보다 먼저 바알 신 숭배에 대한 엄숙한 항의가 앞서야 했으며 기드온은 그의 백성의 원수와 싸우러 나아가기 전에 우상숭배에 대하여 전쟁을 선언해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기드온은 종들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 동안에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바알에게 예배하러 나온 오브라인들은 크게 분노하여 기드온을 죽이려 할 때, 천사의 내방에 대하여 들은 요아스는 자기 아들을 위해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삿 6:31)고 변호하였습니다. 바알이 자신의 제단을 보호할 수 없을진대 어찌 그를 예배하는 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 싸움을 위하여 자기를 부르시고 자기와 함께 하시리라는 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필요하여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삿 6:36, 37)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침에 본즉 그의 기도 대로 응답 되었으나 양털은 대기 중에 있을 때에 자연히 습기를 흡수하므로 이 시험은 결정적이 될 수 없으리라는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그의 극단적인 신중성이 여호와께 불쾌히 여기심이 되지 않도록 간청하면서 그 표징이 반대로 되도록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요구를 허락하셨습니다.

 

10.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自矜)하지 말라…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8)

하나님의 증거로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침략자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그의 군대를 인솔해 나갔습니다. 기드온이 인솔하는 모든 군사는 겨우 3만 2천 명이었으나 그의 앞에는 원수의 대군이 널려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삿 7:2, 3)셨습니다. 자원하여 위험과 난관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자나 세속적 이익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업에서 떠나게 할 자들은 이스라엘 군대에 힘을 보태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존재는 다만 약점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법에는 온 군대가 출전하기 전에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리고 유사(有司)들은 더 나아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신 20:5~8)고 선언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그의 군사의 수가 원수의 수와 비교하여 너무나 적은 까닭에 선전 포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군사가 너무 많다는 말씀을 듣고 기드온은 크게 놀랐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있는 교만과 불신을 보셨습니다. 기드온의 감동적인 호소에 분기한 그들은 곧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미디안의 군중을 보고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승리하면 바로 이런 사람들은 승리를 하나님께 돌리는 대신에 그 영광을 스스로 취할 것입니다.

 

11. 진정한 하나님의 군사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기드온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2만 2천 명 즉 그의 온 군대의 3분의 2가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드온에게 임하였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삿 7:4). 백성들은 물가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그들은 이제 곧 적진으로 진격하게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앞으로 행진하면서 급히 손으로 물을 조금 움켜 핥아먹는 자는 매우 적고 거의 모두 무릎을 꿇고 한가롭게 시내 표면의 물을 마셨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 자는 불과 만 명 중 3백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택함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저희 집으로 돌아갈 허락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가장 단순한 방법에 의하여 우리의 성품은 시험을 받게 됩니다. 위험한 때에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려고 하는 자들은 위급한 경우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게으르고 방종한 자들을 위하여 그분의 사업 가운데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은 자신들의 필요로 인하여 의무를 이행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었습니다. 선발된 3백 명은 용기와 자제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신앙이 돈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휘하실 수가 있으셨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성공이란 수효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적은 사람을 통하여서도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수효를 통해서 보다는 오히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성품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12. 하나님의 병기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략자의 대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산벼랑에 주둔하였습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삿 7:12). 기드온은 내일의 전투를 생각하고 떨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밤에 기드온에게 명하시기를 그의 부하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라 그리하면 그가 용기를 얻을 무슨 말을 들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내려가 어둠과 고요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병사가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의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삿 7:13). 그 동료는 숨어서 듣고 있는 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로 대답하기를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삿 7:14)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알지 못하는 자들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명령 하에 있는 소수의 군사에게로 돌아와서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삿 7:15)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공격 계획이 기드온에게 제시되었고 그는 그것을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3백 명의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각 사람은 나팔과 진흙 항아리 속에 감춘 횃불을 받았습니다. 군사들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방향으로부터 미디안 진에 접근하도록 배치되었습니다. 이 세 부대는 깊은 밤에 기드온의 전쟁 나팔의 신호를 따라 그들의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려 타오르는 횃불을 쳐들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삿 7:20)라는 무서운 군호를 외치면서 적군에게로 질주하였습니다.

 

13. 승리의 비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5:33)

자던 원수의 미디안 군사는 돌연히 깨었습니다. 타오르는 불빛이 사방에 보이고 사방에서 나팔 소리와 공격자의 부르짖음이 들렸습니다. 미디안인들은 저희가 압도적인 대군에 포위된 줄 믿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하면서 저희 동료를 적으로 오인하고 서로 죽였습니다. 미디안인들은 요단강을 건너 그들의 영토로 돌아가려고 강 쪽으로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사자를 에브라임 지파에게 보내어 그들로 일어나 도망하는 자들을 남방 여울에서 막도록 명하였습니다. 전 군대를 인솔하고 왔다가 겨우 1만 5천 명의 군사와 함께 도망하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에게 따라 잡혔으며 그들의 군대는 산산이 흩어져 지도자들은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 현저한 패배로 인하여 12만 명 이상의 침략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미디안인은 세력이 꺾여 다시는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다시 싸우셨다는 소식은 신속히 원방에 전파되었습니다. 단순한 방법으로 대담하고 호전적인 백성의 권세를 꺾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인근 민족들의 공포심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인을 정복하도록 택하신 지도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관원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를 용기와 성실의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불신하고 여호와의 지도를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사업을 위해 가장 큰 재능을 가진 자를 택하지 않으시고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자를 택하십니다. 주께서는 자신들의 부족함을 가장 절실히 느끼고 하나님을 그들의 지도자요 힘의 근원으로 의지할 자들을 통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에 그분의 능력을 연합하심으로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그들의 무지에 그분의 지혜를 결합하심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실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 3:20)

참으로 겸손한 마음을 품는다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매우 큰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신뢰하면서 어떤 큰 책임을 맡아 성공할 수 있는 자는 과거나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쓰실 인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세상 사람이 위대하고 재능이 있고 훌륭하다고 존경하는 자들을 택하시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 자들은 흔히 너무나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고 없이도 행할 능력이 있다고 느낍니다.
여리고를 포위한 여호수아의 군사와 미디안 대군 주위에 있던 기드온의 300명의 적은 군병이 나팔을 분 단순한 행위는 하나님의 권능을 통하여 원수들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떠나서 사람들이 고안해 낸 가장 완전한 어떤 제도라 할지라도 실패로 끝날 것이며 반면에 가장 전망이 없는 듯이 보이는 방법이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겸손과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에 성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은 마치 기드온과 여호수아가 가나안인과 싸울 때에 필요했던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영적 싸움을 할 때도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듭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 대한 신앙 즉 모든 위급한 때에 그분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신뢰심을 갖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분의 백성의 노력으로 일하시고 연약한 그릇들을 통하여 큰일을 성취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온 하늘은 우리가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15. 겸손한 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자기 민족의 원수를 추격하는 일에서 돌아온 기드온은 자기 동족으로부터 질책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인을 치려고 이스라엘 군사를 소집할 때에 에브라임 지파는 거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의 노력이 위험한 기도(企圖)인 것으로 판단하고 기드온이 그들에게 특별한 초청을 보내지 않은 것을 저희 동포들과 연합하지 않을 구실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들이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 까닭에 질투하였습니다. 에브라임 군사들은 기드온의 명령을 따라 미디안의 오합지졸을 뒤쫓아 요단강 여울을 장악하여 탈주병들을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에브라임 군사들은 전투에 따라가 승리를 이루는 데 조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드온이 자신의 뜻과 판단대로 다했다고 질투하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승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그분의 능력과 은혜를 감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 택함을 받을 가치가 없음을 나타내었습니다.
승리의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온 에브라임 사람들은 분노하여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부르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였을 때, 기드온은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 8:2, 3)고 말하였습니다.
질투심은 투쟁과 유혈을 가져올 언쟁을 선동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겸손한 대답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를 진정시켰고 그들은 평안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원칙에 관하여서는 확고부동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전쟁에 있어서는 “큰 용사”인 기드온은 또한 좀처럼 보기 드문 공손한 정신을 나타내었습니다.

 

16. 사탄의 암시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을 감사하여 기드온에게 저희 왕이 되고 왕위를 그의 후손에게 확립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 제의는 신정 정치(神政政治)의 원칙을 직접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므로 그들이 한 인간을 보좌에 앉히는 것은 저희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 사실을 잘 알았고 그의 대답은 그의 동기가 얼마나 참되고 고상함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는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대 전쟁 후에 오는 평온한 때가 흔히 싸움할 동안보다 더 큰 위험이 따르는 법입니다. 기드온은 이제 이 위험에 직면하였는데, 지금까지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시를 성취하는 일로 만족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지도를 기다리는 대신에 자신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현저한 승리를 얻었을 때에 사탄은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려는 노력을 배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기드온의 마음에 암시를 준 생각과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하게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그에게 천사가 나타난 반석 위에 제물을 드리도록 명령을 받았으므로 그가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행하도록 임명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재가를 기다리지 않고 적합한 장소를 준비하여 성막에서 진행되는 예배와 동일한 예배 제도를 세우고자 결심하였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인기가 매우 강하였으므로 그는 자기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의 요구를 따라 미디안 사람에게서 취한 모든 전리품을 가지고 기드온은 대제사장의 것을 모방하여 에봇과 흉패를 만들었고 그의 행위는 자신과 그의 가족과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승인되지 않은 예배는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을 마침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17. 감사가 없는 백성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렘 3:9)

기드온이 죽은 후 그의 가문 중에서 큰 무리가 이 배도에 가담하였습니다. 한때 저희 우상숭배를 전복시킨 바로 그 사람에 의하여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과 행동의 감화가 얼마나 멀리 미치는지를 깨닫는 자들은 매우 적습니다. 얼마나 자주 부모의 과오가 그들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들의 자자손손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 영향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은 엄청난 능력이 있어 오랫동안 현세의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로 지은 인상은 분명히 우리에게 축복이나 저주의 반응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생애를 매우 엄숙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도록 겸손히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높은 지위에 서 있는 자들이나 현명한 자들도 과오를 범하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끊임없이 우리의 앞길을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 우리의 길을 절대적으로 의탁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삿 8:33~35).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기드온의 모든 적자(嫡子)들을 살해한 그의 서자 아비멜렉을 그들의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버릴 때에 오래지 않아 정절과 성실에서 떠나게 됩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아야, 기드온처럼 그분의 백성을 축복하는 도구로 사용된 자들에게도 감사할 것입니다. 기드온의 집에 대한 이스라엘의 잔인한 행위는 하나님께 크게 배은망덕한 백성에게만 있을 수 있습니다.

 

18. 우상숭배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렘 2:28)

아비멜렉이 죽은 후 여호와를 경외한 사사들의 통치는 한동안 우상숭배를 저지시켰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이교 사회의 행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북방 지파들 중에는 아람과 시돈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서남부는 블레셋인의 우상에게로, 동부는 모압과 암몬인의 우상에게로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배도는 신속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암몬 족속들이 동쪽 지파들을 정복하고 요단강을 건너 유다와 에브라임 영토에 침입하였습니다. 서부에서는 해변 평야에 사는 블레셋인들이 올라와 원근에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다시 이스라엘은 무정한 원수의 권세 하에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백성들은 다시 저희가 그처럼 버리고 모독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삿 10:10~16). 그러나 슬픔이 참 회개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저희 죄가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온 까닭에 슬퍼한 것이지 저희가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께 욕을 돌린 까닭에 슬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된 회개란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을 통하여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삿 10:11~14).

 

19. 우상숭배의 무서운 결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 1:31)

“환난 때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는 이 엄숙하고 무서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다른 광경 즉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그분의 은혜를 멸시한 자들이 그분의 공의와 대면하게 될 최후의 대심판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시간과 재물과 지력을 이 세상 신들을 섬기는 데 써버린 자들은 심판 때에 그 일에 대하여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편의와 세속적 향락의 길을 따르기 위하여 참 사랑의 친구이신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세상의 어리석음과 기만은 그 의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경박한 오락과 의복에 대한 허영심과 식욕의 방종은 마음을 굳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켜 진리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무한히 가치 있는 사물은 경히 여김을 받고 마침내 인류를 위하여 그처럼 큰 것을 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씨 뿌린 것을 수확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엄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잠 1:24~30, 33).

 

20. 세속적인 감화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13)

이스라엘인들은 이제 여호와 앞에 스스로 겸비하고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여호와의 마음은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오, 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이신가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분의 임재를 막은 죄들을 제거할 때에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한번 그들을 위하여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를 구원자로 등장시키셨는데 그는 암몬인들과 전쟁하여 그들의 권세를 완전히 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원수들의 압박 하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배운 교훈을 또다시 잊어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악의 길로 되돌아갔을 때에 그들의 강력한 원수 블레셋인들에게 여전히 압박을 당하도록 그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고 때때로 이 잔인하고 호전적인 민족에게 완전히 예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우상 숭배자들과 섞였고 향락과 예배에 있어서 그들과 연합하여 마침내 그들은 정신과 취미에 있어서 그들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에 이 이스라엘의 친구라고 공언하는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의 가장 원한 깊은 원수가 되어 온갖 방법을 다하여 그들을 멸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너무나 자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우정을 맺기 위하여 세속적 감화에 복종하고 그들의 원칙과 습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친구라고 공언하던 자들이 가장 위험한 원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이에는 조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탄은 경건치 않은 자들을 통하여 외면상의 우정이란 가면 아래 하나님의 백성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여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일합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방벽이 제거될 때에 사탄은 그의 대리자를 인도하여 그들에게 대항하여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할 것입니다.

 

21. 구원의 손길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삿 13:5)

널리 퍼진 배도의 와중에서도 충실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응답이 없고 해마다 그 땅에 대한 압박자의 권세가 더욱 가혹해 갔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도움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블레셋인의 압정의 초기에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이 강대한 원수의 권세를 꺾고자 하셨습니다.
소라 라는 작은 마을에 단 지파에 속한 마노아의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보편적인 배도 중에서도 여호와께 충실한 몇 안 되는 가정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이가 없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시작하시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 사자는 그 여자에게 어떻게 처신할 것과 또 그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에 대하여 지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에게 금지된 것들이 그 아이에게도 똑같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에 추가해서 그 아이의 머리를 깎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아이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바쳐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편을 찾아가 천사가 나타난 사실에 대하여 말하자 그의 남편은 그들에게 위임된 중대한 일에 어떤 과오를 범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삿 13:8)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천사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 마노아가 근심스럽게 질문하였을 때, 지난번에 준 지시가 다시 반복되어 주어졌습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삿 13:13, 14).

 

22. 아이를 위한 부모의 역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신 12:32)

하나님께서 마노아에게 약속하신 아이는 해야 할 중대한 과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이 모두 습관을 주의 깊이 규제해야 했는데 이는 그 아이가 이 사역에 필요한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준 교훈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습관으로 선악 간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원칙의 지배 아래 두어야 하며 절제와 극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미련한 충고자들은 어머니의 모든 욕망과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할지 모르나 그와 같은 가르침은 거짓이요 해로운 것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명령에 따라 극기를 실천해야 할 가장 엄숙한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이 책임을 분담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양쪽 다 자신들의 지적 · 육체적 특징과 성질과 기호(嗜好)를 자녀들에게 유전시키게 됩니다. 부모의 부절제의 결과로 인하여 때때로 자녀들의 체력과 지적, 도덕적 능력에 결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욕망과 격정적인 피와 흥분하기 쉬운 체질을 유전시킵니다. 흔히 음탕한 자들은 그들의 사악한 욕망과 몸서리치는 질병까지도 저희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혹을 저항하는 힘이 부모들에게서 보다 자녀들에게서 더 약화되며 그 경향은 후세로 갈수록 점점 더 낮아집니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에게 태어날 아이에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아기의 영향의 결과를 경히 여기나 하늘에서 이 히브리인 부모에게 보낸 지시와 그것을 가장 분명하고 엄숙한 방법으로 두 번이나 반복하심은 우리의 창조주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 지를 나타냅니다.

 

23. 건강한 식습관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삿 13:24)

하나님의 약속된 아이가 부모에게 좋은 유전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주의 깊은 훈련과 바른 습관의 형성이 뒤따라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래의 사사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그 아기에게 어릴 때부터 엄격한 절제의 훈련을 시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나실인이 되어야 했으므로 영원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였던 것처럼 자녀들에게 절제와 극기와 자제에 대한 교훈을 갓난아이 시절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천사가 금지한 것에는 “부정한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하고 부정한 식품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히 의식적(儀式的)인 것에 불과하거나 독단적인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생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유대 백성들을 특출하게 만들어 왔던 경이로운 생명력의 비결은 이러한 구별을 엄수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절제의 원칙들은 주정음료의 사용을 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주정음료와 똑같이 건강에 해로운 것이 됩니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식사의 습관이 그들의 건강과 그들의 성품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깨달아야 할 만큼 깨닫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식욕은 항상 도덕적·지적 능력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합니다. 육체는 마음의 종이 되어야 하며 마음이 육체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정한 때에 성취되어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삼손이라 불렀습니다. 그 소년이 성장할 때에 그는 비상한 체력을 가졌음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력은 그의 튼튼한 근육에 의한 것이 아니요 그의 깎지 않은 머리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나실인으로서의 조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24. 삼손의 결혼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5, 16)

만일 삼손이 그의 부모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순종하였더라면 그의 운명은 보다 더 고상하고 행복했겠지만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함으로 그는 타락하였습니다. 삼손이 살던 곳은 블레셋 나라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삼손은 그들과 쉽게 어울리게 되었고 젊은 시절부터 정교(情交)의 싹이 터서 그 영향은 그의 전 생애를 어둡게 하였습니다. 딤나라는 블레셋인의 마을에 사는 한 젊은 여인이 삼손의 애정을 사로잡았으며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부모는 삼손의 목적을 단념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으며 마침내 결혼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삼손은 성년이 된 바로 그때 곧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때, 다시 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그가 하나님께 충실해야 할 그때에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결합하였습니다. 삼손은 자기가 선택한 상대와 결합함으로 하나님을 보다 더 영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생애를 통해 성취해야 할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처지에 자신을 두게 되는 것이 아닌지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삼손과 같이 남편이나 아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기호의 지배를 받아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자주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을뿐더러 하나님께 영광 돌릴 마음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결혼 관계에 지배적인 감화를 끼쳐야 합니다. 그러나 결합을 주도하는 결혼의 동기가 그리스도인 원칙들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자신의 부하들과 연합하게 함으로 그들에 대한 자기의 세력을 강화시키려고 심중에 성화되지 않은 정욕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로 더불어 연합하지 않도록 분명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25. 삼손의 복수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사 63:3)

삼손은 그의 결혼 잔치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로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교제에 스스로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그 동료들의 습관과 풍습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비된 시간은 낭비라고 하기보다는 악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칙의 성채를 무너뜨리고 영혼의 요새를 약하게 하는 사상이 받아들여지고 그런 대화가 교환되는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아내는 결혼 잔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남편을 배반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여자의 불성실을 보고 분노한 삼손은 당분간 그 여자를 버리고 홀로 소라에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마음이 누그러진 삼손은 그의 신부를 위하여 다시 돌아왔으나 그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들과 포도원을 황폐시킨 삼손의 복수는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그 여자가 그들의 위협 때문에 속임수를 쓴 데서 소동이 일어났으나 그들은 그 여자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미 한 손으로 어린 사자를 죽이고 아스글론 사람 삼십인을 살해했던 삼손은 그의 아내를 잔인하게 죽인 사실에 격분하여 블레셋 사람을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진멸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원수들을 피하여 유다 지파에 속한 “에담 바위 틈”으로 물러갔습니다.
강한 블레셋 군대가 이곳까지 삼손을 추격해 왔습니다. 몹시 놀란 주민들은 비굴하게도 삼손을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기로 합의했습니다. 따라서 유다 사람 3천 명이 그에게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큰 무리였을지라도 삼손이 자기 동족은 자기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 없었더라면 그들은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삼손은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지는 데 동의하고 자기를 결박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26. 계속되는 방종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삼손은 결박되어 원수의 진영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여” 삼손은 강한 새 줄을 마치 불탄 삼처럼 산산이 끊었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 손에 잡은 무기는 나귀의 턱뼈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것을 칼이나 창보다 더 유효하게 사용하여 블레셋인들을 진멸하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꺼이 삼손과 연합하여 승리할 때까지 그들을 추격했더라면 그때에 압박자들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풀이 죽고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쫓아내도록 명하신 사업을 등한히 하였으며 그들의 부패한 행위에 가담하고 그들의 잔인성을 용납하였고 그들 자신들에게 직접 해가 오지 않는 한 그들의 비행을 옹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압박자의 권세 아래 들어갔을 때에 저희가 하나님께만 순종했더라면 능히 피할 수 있었을 타락에 나약하게 굴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일으키셨을 때에도 그들은 가끔 그들의 구원자를 버리고 원수들과 연합하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삼손이 승리를 얻은 후에 그를 사사로 삼았고, 그는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그릇된 발걸음은 또 다른 그릇된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 중에서 아내를 취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범했고 그는 또다시 철천지원수들 중에서 불법적인 정욕의 방종을 감행하였습니다. 삼손은 자기의 큰 힘을 의지하고 담대히 가사로 가서 그곳의 한 기녀를 찾았습니다. 그 성읍 거민들은 그가 온 줄을 알고 어떻게든지 복수를 하고자 했으며 그들의 원수 삼손은 그들의 모든 성읍 중에서 가장 견고한 성벽 안에 갇혀 있으므로 그들은 틀림없이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그의 놀라운 힘이 다시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27. 방종의 결과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 두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잠 12:23)

삼손이 위기로부터 간신히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한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그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육욕적 향락을 추구하였습니다. 삼손이 자기의 출생지에서 멀지 않은 소렉 골짜기의 한 “여인을 사랑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들릴라이었는데 “소비자”란 뜻이었습니다. 소렉 골짜기는 포도원으로 유명하였는데 이것 역시 이미 술에 방종한 흔들리는 나실인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은 자신의 순결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결속한 다른 줄을 끊었습니다. 온 블레셋인들은 그들의 원수 삼손의 행동을 방심치 않고 경계했고 그가 이 새 애정에 빠졌을 때에 들릴라를 통하여 그를 멸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삼손이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 감히 그를 포박할 수 없었으므로 가능한 한 그 힘의 비결을 알아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들은 그것을 발견하여 알려 주도록 들릴라를 매수하였습니다.
날마다 들릴라가 조르니 마침내 삼손은 굴복당하여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삿 16:17)고 알려 주었습니다.
삼손이 자는 동안 다량의 머리털이 깎였습니다. 그 후에 들릴라는 전처럼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라고 말하자, 삼손은 일어나 힘을 써서 그들을 멸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무력한 팔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달았습니다. 삼손의 머리를 깎은 후에 들릴라는 그를 괴롭히고 그에게 고통을 가하여 그의 힘을 시험해 보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인들은 그의 힘이 없어진 것을 분명히 알게 되기까지는 감히 삼손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다음에 블레셋인들은 삼손을 잡아 두 눈을 뽑고 가사로 데려갔습니다. 여기서 삼손은 족쇄에 채여 감옥에 갇혀 고역에 종사하였습니다.

 

28. 삼손의 회개와 죽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삼손이 이처럼 약해지고 눈멀고 감옥에 갇혀서 가장 천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사사요 전사였던 그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삼손은 거룩한 부르심의 조건을 조금씩 깨뜨려 갔고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으셨으나 삼손이 그의 비밀을 누설할 만큼 죄악의 세력에 자신을 굴복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떠나셨습니다. 그의 긴 머리에 효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의 증거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욕의 방종으로 그 상징을 잃었을 때에 그것이 나타내는 축복도 역시 상실되었습니다.
고통과 굴욕과 블레셋인의 희롱을 받는 가운데 삼손은 이제까지 그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자신의 연약함을 더욱 많이 알게 되었고 그의 고통은 그를 회개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머리가 자람에 따라 그의 힘은 서서히 되돌아왔으나 그가 족쇄에 차인 가망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한 그의 원수들은 아무 염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인들은 승리를 저희 신들에게 돌리고 미친 듯이 기뻐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전하였습니다. “바다의 보호자”란 어신(魚神) 다곤을 위하는 잔칫날이 정해졌습니다. 온 블레셋 백성들과 방백들이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드린 뒤에 환락과 축제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후에 다곤의 힘을 과시하는 최고의 전리품으로서 삼손을 끌어내 왔습니다. 백성들과 방백들은 그의 비참함을 보고 조롱하고 “우리 토지를 헌” 자를 넘어뜨린 그들의 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소서”(삿 16:28)라고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고 삼손은 강한 팔로 두 기둥을 껴안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라고 부르짖으면서 몸을 굽히니 지붕이 무너져 그 많은 군중을 모두 멸하였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 16:30).

 

29. 도움을 갈망하는 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삼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으나 하나님께 찬양이 되고 민족의 영광이 되었을 삼손의 생애의 기록은 어둡고 무서운 것이 되었습니다. 만일 삼손이 거룩한 부르심에 충실했더라면 그가 명예를 얻고 높임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혹에 굴복하고 그의 임무에 불충실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명은 패배와 속박과 죽음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삼손은 육체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나 자제와 성실과 확고부동함에 있어서는 가장 약한 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정욕의 지배를 받는 자는 약한 사람입니다. 인간의 참 위대함은 그가 감정을 지배한 힘으로 측정되는 것이지 그를 지배하는 감정의 힘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보호가 삼손에게 임하여 그로 하여금 맡겨진 사업을 성취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의 생애는 바로 시초부터 체력과 지력과 도덕적 순결을 위한 좋은 조건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동무들의 감화로 인하여 삼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버리고 악의 조수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의무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나 만일 사람들이 고의로 자신들을 유혹의 세력 하에 두면 그들은 조만간에 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업을 위하여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하는 자들을 사탄은 전력을 다하여 타락시키려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성품의 결점들을 통하여 우리의 심신을 모두 지배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 결점들을 계속 품고 있다면 그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패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연약한 노력으로 악의 세력을 정복하도록 홀로 버려둔 바 되지 않았습니다. 도움은 가까이 있으며 참으로 도움을 갈망하는 모든 영혼에게 도움이 주어질 것입니다.

 

30. 한나의 슬픔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살전 5:14)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사람 엘가나는 부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한나도 매우 경건한 부인이었으며,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은 깊은 열심과 고상한 믿음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히브리인이 매우 열렬히 갈망한 축복을 이 경건한 부부는 받지 못하여 그들의 가정에는 아이의 음성을 듣는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의 가계(家系)를 영속시키려는 소망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이 제2의 결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이 처사는 행복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집안에 아들딸들이 탄생하였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의 기쁨과 아름다움은 훼손되었고 가정의 평화는 깨어졌습니다. 새 아내 브닌나는 질투심이 강하고 마음이 좁고 오만하고 불손하였습니다. 한나에게는 희망이 깨어지고 생애가 무거운 짐처럼 보였으나 부인은 불평하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 시련을 견디었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의 법도를 충실히 준수하여 정해진 회집일에는 가족과 함께 예배하고 희생 제물을 드리려고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가정에 저주를 가져온 악한 정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축제에까지 침입하였습니다. 엘가나는 이 자리에서 자녀들의 어머니와 그 아들과 딸들에게 그들의 몫을 각각 나눠 주고, 한나에게는 그를 중히 여기는 증거로 두 몫을 주어 그에 대한 자기의 애정이 마치 그가 자녀를 가진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때에 질투심에 불타는 둘째 아내는 자신이 하나님의 큰 총애를 받은 자로서 우대받기를 요구하고 한나가 아들이 없는 것은 여호와의 불쾌히 여기심의 증거라고 그를 조소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해마다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한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한나는 슬픔을 감출 길이 없어 울음을 터트리고 잔치 자리에서 떠나갔습니다. 그의 남편이 그를 위로하고자 애썼으나 헛수고였습니다.

 

31. 하나님의 전신갑주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찌어다”(엡 6:23)

우리는 모두 다 전신갑주를 입고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의 군병들로 택하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에는 모든 일에 정직한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향을 누르고 이기려고 애쓸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사 모든 행동을 용의주도하게 하실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원수에게 진리를 헐뜯을 기회를 주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의를 보호하는 우리의 흉배를 붙여야 하며 그것을 착용하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생명을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무장을 하고 있으면 원수의 공격이 우리를 이길 힘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이 악한 천사들의 숫자를 알 수 있다면, 그들의 계략과 활동을 알 수 있다면 교만과 경박한 언동이 훨씬 적을 것입니다. 사탄은 그가 다스리는 악한 천사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그의 대리자들의 수를 늘려 나갑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을 배후에서 교사합니다.
이처럼 어둠의 정사와 권세가 숫자도 많고 활동도 지속적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용기가 꺾이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과 같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시험을 피할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탄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다 그의 성품을 재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다 선망과 증오와 야망을 주입시키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의 보좌를 세워놓고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할 경배를 가로채고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영적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개혁하고 우리 옛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투쟁은 내년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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