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제시하는 순종 [신앙기사 1부]

제1부 성경이 제시하는 순종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순종이 무엇인지 연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자.
우선 인류가 창조되었던 에덴의 낙원으로 가보자. 창세기 2:16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말씀하셨다. 그 후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령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라는 책망을 하셨다.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낙원을 살아가는 사람이 갖추어야만 할 덕목이다. 순종은 사람이 그곳에 살 수 있는 조건이었으며, 창조주가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임을 주목하라. 여기에는 믿음이나 겸손,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은 없다. 순종이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권리와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하나의 조건인 순종에 대한 요구 또한 절대적이다. 순종은 사람에게 부과된 하나의 명령이다.
이제 인류의 최종 운명이 결정될 성경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보자. 그 마지막 장에서는,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개역성경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 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가지며 그 문들을 통해 그 성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라”(영어 KJV, 계 22:14)라고 말씀한다. 그 외에도 여자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이라는 말씀과 성도의 인내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 14:12)이라는 말씀에서도 동일한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성경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 생명 나무와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나아가는 권세를 얻는 길은 오직 순종뿐이라는 것이다.
불순종으로 생명 나무에 나아가는 권리를 잃어버린 인류에게 어떻게 해서 회복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막아버린 성경 시작의 불순종부터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다시 회복한 성경의 마지막 부분의 순종에 이를 때까지,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라. 로마서 5:19의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과 빌립보서 2:8,9의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주셨다는 말씀과 히브리서 5:8,9의 “그가 …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는 말씀들을 읽어보라.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전체가 순종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주님은 불순종한 우리를 다시 순종의 삶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도,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나누어 주시고자 하는 영광을 받는 것도 모두 순종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에덴의 낙원과 갈보리 십자가, 천국, 이 모두가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순하고 당연하고 변치 않는 순종이다.
이제 각 새로운 시대마다 주어진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자.
먼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자.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뀔 때마다 언제나 순종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자세히 보라.

 

 

1. 인류의 새로운 조상 노아와 순종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씀이 네 번씩이나(창 6:22, 7:5,9,16)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맡기시고, 사람들의 구원자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행하는 순종의 사람이다. 이러한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분명하다.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창 6:9).

 

 

2.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과 순종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순종하여”(히 11:8). 그가 이 믿음의 순종 학교에 입학한 지 사십 년이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완전케 하사 충만한 축복을 부어 주셨다. 아브라함이 그러한 축복을 받은 것은 그의 순종 때문이었다. 그가 아들을 묶어서 제단에 올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6~18). 이삭에게는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 ”(창 26:3, 5)라고 말씀하셨다.
순종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쁜 것이며,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상급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과연 언제나 알게 될까? 세상에 복을 끼치는 길은 바로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의지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했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을 누구나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이렇게 순종하면(이 길을 걸으면) 된다.

 

 

3. 백성의 지도자 모세와 순종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백성을 위한 메시지를 주셨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이것은 당연하였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거룩한 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완전함으로의 초청이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성소의 건축물을 생각해 보자. 출애굽기 마지막 세 장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모세가 다 행하였더라.” 그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라는 표현이 19회나 기록되어 있다.
레위기 8, 9장에서도 제사장들과 성막의 정결 문제에 대한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그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레 9:23,24)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순종할 때 바로 그곳에 기뻐 임재하신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자비와 임재로 관을 씌우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불순종의 결과들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그런 후에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또다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신명기에서 가나안을 멀리 바라보며 모세가 백성들에게 한 말씀들을 모두 읽어 보라. 그러면 성경의 그 어떠한 책보다도 “순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또한 순종을 통해 반드시 얻게 되는 축복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것을 한 말씀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 듣지 아니하고 …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
복된 삶의 기본은 바로 이것이다. “들으면(순종하면) 복이 될 것이요” 에덴의 낙원이나 천국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에서도 순종의 땅이 된다면 그곳은 축복의 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불변의 사실을 삶의 원칙으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혹시라도 축복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순종을 구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채워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하면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끊임없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4. 이스라엘 왕의 임명과 순종

 

사울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통치자로 세우실 사람에게 얼마나 엄격하고 전적인 순종을 원하시는지 매우 엄숙한 경고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사무엘이 와서 희생을 드리고 사울이 해야 할 것을 보여줄 때까지 7일 동안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사울 왕에게 하셨다(삼상 10:8). 그러나 사무엘이 늦어지자(삼상 13:8~14) 사울은 스스로 번제를 드렸다.
그 후에 사무엘이 와서 그 현장을 목격하고 사울에게 이렇게 책망하였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이는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3:13,14).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자를 존귀케 하지 않으신다.
사울에게 자기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줄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졌다. 아말렉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사울은 이에 순종한다. 20만 명의 군대를 모아 광야로 들어가서 아말렉을 쳐부순다. 그러나 사울은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가축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기고, 아각을 사로잡았다. 이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그런데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보고하였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삼상 15:13). 그리고 후에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삼상 15:20)하였다고 대답한다. 많은 사람은 사울의 이 대답이 사실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순종은 완전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정확하고도 전적인 순종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완전히 진멸하라, 하나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양들을 남겨 두었다. 사무엘은 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다”(삼상 15:22,23)고 하였다.
이것은 그 많은 순종 중에 안타까운 순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죄와 모든 불순종에 대하여 이렇게 명령하신다. “완전히 진멸하라! 하나도 남기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진멸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면서도 때로는 자기 방식을 조금씩 섞어 넣어서 하나님의 방식을 보완하려는 태도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나는 순종하였나이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노라”고 말씀하시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불순종이 남아있지는 않는지 보여주시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장 사소한 것까지도 전심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순종으로 스스로 만족하지는 말자.

 

 

5.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경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신명기 다음으로 “순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이유는 슬프게도 불평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조를 어떻게 대해 오셨는지를 집약해서 한 가지 사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열조를 …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하였으나”(렘 7:22,23).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분의 독생자의 희생에 대한 말씀까지도, 모두 사람을 순종에 이르게 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에 들어 있는 상상을 초월한 모든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러면 신약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자. 신약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순종이라고 하시며 특별히 순종을 강조하고 계심을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왔나이다”(히 10:7)라는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늘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요 5:30)라고 고백하셨다. 자신이 친히 행하신 모든 일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고통당하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동일한 순종의 사상을 말씀하셨다.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8).

 

 

6. 예수님이 가르치신 순종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친히 보여주신 그 순종과 동일한 순종을 모든 가르침을 통해 요구하셨다. 주님의 모든 사역은 순종으로 일관되고 있다. 순종은 주님의 구원 사역의 본질이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되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다. 주님의 마지막 강화에서도 참 순종의 영적 성격을 아주 훌륭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사랑으로 생겨나고 사랑에 의해 이끌림 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순종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 보혜사를 너희에게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14:15,16,21,23). 이 외에 어떠한 말로 이보다 더 간결하게 또는 더 힘 있게 순종의 그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움과 가능성을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성경 어느 곳도 이보다 더 고상하게 영적 삶이나 사랑으로 행하는 순종의 능력을 그 한 가지 조건으로 잘 나타내는 곳은 없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늘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자주 물어왔던가? 우리는 더 많은 성경 지식, 더 큰 믿음, 더 많은 기도,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생각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한 가지 단순한 진리는 무시해왔다. 예수님은 그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이것은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신성한 모범이셨다. 우리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땅에서의 순종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좌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땅에 있는 우리의 사랑에서 우러나는 전적인 순종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만일 어떤 닮은 점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고, 우리도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날마다의 순종을 하늘의 영광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자.

 

 

7. 우리 주 예수님의 제자들과 순종

 

1)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의 두 가지 말씀을 살펴보자. 그 말씀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베드로에게 들어가 그 사상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성령 강림에 앞서서 준비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은 그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그 후에 “우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순종은 반드시 죽기까지 실행되는 순종이어야 한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의 순종을 감히 막을 수가 없다.
베드로전서 1장 앞부분을 보면 베드로의 신앙 사상에 있어서 순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2절에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순종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며, 성령의 사역 목표이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14~15절에서는 순종으로 태어나고 순종에 의해 구별되며 순종의 지배를 받는 “순종하는 자식처럼 …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돼라”고 말씀하고 있다. 순종은 진정한 거룩함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22절에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지 지적 동의나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삶 자체를 하나님의 진리의 지배 아래 완전히 복종시키는 참 순종을 말한다.

2) 사도 바울의 표현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사도가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롬1:5, 16:26) 바울은 “이방인을 순종케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므로 우리는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들이 된다고 가르친다. 아담과 우리 자신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온 것처럼, 그리스도와 우리의 순종은 복음이 말씀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3)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교훈한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약4:6,7).

4) 사도 요한은 매우 강하게 경고한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요일 2:4). 순종이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표이다. 요한은 또 강조하면서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18~22). 순종은 우리의 선한 양심의 비결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의 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5:3).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순종은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우리의 사랑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8. 그리스도인의 삶은 첫째가 순종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성경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속에서 순종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순종이 내 마음과 내 삶에도 그렇게 취급되고 있는가? 참으로 나는 순종이 나의 모든 행동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음을 주관하도록 했는가?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을 내 삶의 최고의 권위에 올려놓고 살았는가?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함에도 우리의 삶을 계획할 때 순종을 전혀 중요시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바로 그 이유로 기도와 하는 일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임재를 충만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삶의 출발점과 목표에 우리의 순종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 이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고자 하는 성실한 열정을 불어 넣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자. 순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의 제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제사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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