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뽑는 날 [생활간증 2]

[생활간증 2] 사랑니 뽑는 날

– 박경주

 

초등학교 때 일이다. 방학이 되면 사촌 언니 집에 놀러 갔었다. 내 또래 조카들이 있었기에 자주 가서 몇 밤씩 자고 오곤 했다.
초등 2학년 여름 방학 때인 것 같다. 방학이 되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놀러 간 나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마침 조카들을 데리고 뇌염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다며 사촌 언니가 나도 당연히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사촌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얼떨결에 끌려가다시피 가게 된 나는 대기실에서 벌벌 떨며 순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 겁이 많은 나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 안 맞으면 안 되냐며 계속 사촌 언니에게 간청하였다. 집에 가서 가까운 보건소 가서 맞을 거라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몇 분을 그랬을까?

“OO야, 정말 어울리지 않는구나. 더 이상 못 보겠다.”
잠잠히 침묵을 지키시던 선비 스타일의 형부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때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내 간청이 접수되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라 키 크고 덩치 큰 사람이 무서워 벌벌 떠는 모습은 정말 보기 안 좋은가 보구나 하는 서글픈 깨달음이 어린 내게는 좀 많이 부끄럽고 섭섭한 기억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웬만해선 예방주사 맞을 때도 앞에 줄을 서서 맞았고 병원에 갈 일이 있어도 부모님 앞이 아니면 무섭지 않은 척하느라 애를 썼다. 물론 어른들 눈에는 속이 다 보였겠지만…
그리고 사실 병원에 가는 일도 거의 없었기에.

그런 내가 며칠 전, 난생처음 치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게 되었다. 스케일링 하는 것 말고는 진짜 처음이다. 아랫니가 시큰하고 이상하여 간 것이다. 원인은 사랑니 때문이라고…
이름은 사랑니인데 그로 인해 앞의 어금니가 부분적으로 썩었고 신경까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그래서 젤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니 발치! 으악!!

초등학교 시절 흔들리던 유치를 빼던 일을 기억해 보았다. 흔들리는 이를 뺄 때도 참 아팠으며 울고불고 하며 뽑았던 것 같은데… 흔들리지도 않는 사랑니를 억지로 치료를 위해 뽑아야 하다니… 그러나 어쩌랴, 너무 기분 나쁘게 시큰거리는 것을.
20년 전 보건소 치과의의 “사랑니는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니… 당장 병원 가서 뽑는 게 좋을 것이다”라는 충고를 진작 들을 것을… 후회막심 *100

하여간 그래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치과를 가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엄마 답지 못하게… 나잇값도 못하고… 어제저녁부터 슬프고 무섭고 걱정되고 기가 푹 죽어 있는 나!

“얘들아, 이제 가자.”
가기 싫은 치과를 가기 위해 억지로 궁둥이를 들며 아이들을 재촉한다. 그때, 우리 큰 딸이 “엄마, 이거 나중에 읽어봐요.” 하며 내 바지 주머니에 뭔가를 집어넣는다. 분홍색 딱지 같은 것을…
“응. 나중에 볼게.” 별생각 없이, 관심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를 타고 간다. 이젠 진짜 가는 거다. 히잉…
이젠 딸이 준 종이를 펼쳐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것들을 자주 들고 와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뿌듯해하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기질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때마다 무지 대견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보아주어야 하는 것이 엄마의 의무가 아닌가? 사실 그런 의무가 귀찮기도 하지만 때론 나도 덩달아 뿌듯하고 놀라울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오늘 큰 딸이 준 것은 그런 유의 그냥 종이 만들기가 아니었다. 그건 편지였다.

 

엄마, 저 OO에요. ^^
엄마, 사랑니 빼기가 싫죠?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상상해 보세요. 엄마가 나중에 시온성에 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엄마를 환영해 줄 거예요. 엄마가 마음이 힘들 때는 나도 마음이 아파요. 힘내세요! 하나님은 언제나 엄마랑 같이 계세요. 엄마가 하나님의 손을 놓으면 하나님은 슬퍼하세요. 엄마가 기쁠 때는 하나님과 나도 모두 기뻐요.
엄마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에요. ^^ 사랑해요. (하트 하트)

 

눈물이 핑 돈다. 어린 딸이 보기에도 참 보기가 그랬나 보구나.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만 참 고마웠다.
하나님 알았어요. 기운 낼게요. 나 같은 것이 뭐가 예쁘다고…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는데 앞 좌석에 앉아 있던 딸이 나를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고 배시시 수줍게 웃는 딸의 얼굴이 보인다. 나도 웃는다. 수줍게 배시시…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신다. 세상천지를 통해서 내게 이야기하신다. 사랑한다고… 참 사랑한다고… 난 그저 눈물이 난다. 내가 뭐라고… 나는 그 사랑도 모르는 바보인데… 늘 그 사랑 앞에 죄스러운 눈물만 흘릴 뿐인데…
내가 이렇게 연약하고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주님의 맘을 아프게 하고, 쉽게 뒤돌아 서고, 주님을 부끄럽게 하고…
이렇게 할 줄을 다 아시면서 왜 날 위해 어린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나요? 왜 날 위해 죄의 고통을 견디며 이 세상에서 30여 년을 사셨나요? 왜 십자가의 죄의 중압감을 견디기로 결정하셨나요?
주님! 정말 알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그래서 나도 주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보이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으며 주님이 저로 인해 걱정스러워하지 않게 주님이 저로 인해 자랑스러워하시게 하고 싶습니다.

목이 메는 주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리 눈물은 나는지…

주님!
정말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추천 게시물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