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의 빗방울, 의의 복음 [신앙기사 2부]

제2부 늦은 비의 빗방울, 의의 복음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의롭게 하는 복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기독교 역사에서 이뤄지는 종교운동이나 부흥운동에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행하신다. 초대교회 때 이른 비가 내린 것처럼 마지막 때 늦은 비가 임하는데, 그렇다면 늦은 비 성령은 시작됐을까 아니면 올 것인가?
늦은 비는 이미 시작됐고 또 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시작된 것은 무엇이고, 올 것은 무엇일까? 이른 비도 이른 비의 빗방울이 있었고, 이른 비의 소나기라는 두 국면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늦은 비도 늦은 비의 빗방울이 있고, 늦은 비의 소나기가 있다.
늦은 비의 빗방울은 시작되었는데 그렇다면 늦은 비의 빗방울은 무엇일까? 빗방울이 떨어진 다음 소나기가 퍼붓듯이, 빗방울에 적셔져야 소나기를 받게 된다. 의롭게 하는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늦은 비의 능력이 충만하게 부어진다면 그 능력을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빗방울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소나기가 임하지 않는다. 이른 비의 빗방울은 성경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이 성경을 통해 증명되고 깨닫자 성령이 이르렀다.
그렇다면 늦은 비의 빗방울도 성경을 깨닫는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늦은 비를 불러오는 특별한 복음이 있는가? 늦은 비의 빗방울로서 역할을 하는 특별한 의의 복음, 즉 인류를 의롭게 만드는 복음이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Son of man)이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 성육신에 관한 복음이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새로운 사실도 없는데 누가 이것을 몰라?” 반문할 수도 있다.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사람의 아들, 즉 인간으로 오셨는데 어떤 인간으로 오셨는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성육신의 비밀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7).
적그리스도가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한다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역사상의 인물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가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체적 본성을 가지고 오셨음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분명히 말하기를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혈육/육체를 취하셨다고 말씀한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4,17).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 3:16). 예수님이 왜 이 방법을 택하셨는가? 그렇게 하여 그분은 우리처럼 유혹을 받을 수 있으셨고, 그래서 우리의 싸움을 이해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를 쓰셨을지라도 결코 죄는 짓지 않으셨다!
기독교인 중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메시아요, 그리스도다.” 그분의 신적인 신분, 그 사실을 모두 인정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부인한다. “그분은 우리와 뭔가 다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안 돼!” “그분이 십자가에서 버티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 안에 어떤 신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거야” 이것이 바로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육체로 오셔서, 동일한 시험을 받으시고, 아니 더 힘든 시험을 받으셨지만 모든 죄에 승리하셨다. 어떻게 승리하셨는가? 그분은 하나님이시니까 “그까짓 거” 하면서 이기셨을까? 아니다. “기록되었으되”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셨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그렇다. 이 시대에도 성령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는가? 아멘! 우리를 승리할 수 있게 만드는 복음, 우리를 순종케 하며 의롭게 만드는 복음, 이것이 늦은 비의 빗방울이다.

 

 

새롭게 알고, 새롭게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

 

늦은 비의 빗방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아담이 창조된 이후 4천 년이 지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탄생하실 때, 우리와 동일한 인간적 본성과 연약함을 지신 그런 인간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셨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유전법칙이 끼쳐온 죄의 결과를 물려받고 태어나듯이, 예수님도 그 유전법칙을 지니고 태어나셨다. 비록 이런 유전을 물려받고 태어나셨지만, 우리에게 순종과 죄짓지 않는 생애의 모본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승리하셨고, 그리스도를 도우셨던 능력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이 진리가 바로 늦은 비의 빗방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침례 요한이 길을 예비했던 것처럼, 이 늦은 비의 빗방울이 늦은 비의 소나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의의 복음이다. 우리는 늦은 비의 빗방울을 통해 예수님을 지적으로, 영적으로, 경험적으로, 온전히 알게 된다.
나의 아픔과 투쟁을 과연 예수님이 아실까? 격렬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이 세상의 악함을 우리 주님은 아실까? 이처럼 예수님이 너무 멀리 계시는 것처럼 생각된다면 성육신의 복음이 믿음과 소망을 줄 것이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히 5:9)셨다.
우리와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으나 온전히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어떻게 도울지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은 예수님이 나와 동떨어진 신이 아니라 오늘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분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우리에게 소망과 믿음이 생기게 만든다. 그분은 인자로서 우리에게 순종의 모본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 성육신의 복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신뢰하게 된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분이 나를 죄의 세력에서 구원하여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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