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신앙기사 3부]

제3부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본래 메시아닉 쥬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 회자되는 메시아닉 쥬는 실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교파와 같은 개념으로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별히 한국 메시아닉 쥬는 기독교가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헬라 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언급하며 실제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제3성전을 짓기 위한 움직임 등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메시아닉 쥬라는 이름보다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절기파” 또는 토라에 언급된 실제적 실천을 주장하기 때문에 “토라파”라고 해야 더 합당한 이름일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도 이런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러한 주장을 다른 복음이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거짓 교사라 하여 사도들과 바울이 심각하게 경고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갈 1:6).

 

 

대체신학

 

예수님은 혈통적 유대인들에 대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마지막 예언을 하셨고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국가적, 선민적 유대인들의 운명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유대인 디아스포라[세계 도처에 흩어진 유대인이나 유대인 공동체]는 성경의 예언 성취이지만, 1948년 육적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은 성경의 예언과는 결코 무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언이 없다.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있어도 선민으로서의 지위는 서기 70년에 끝났고 그 자리에는 열매를 맺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마 21:43). 이것을 메시아닉 쥬는 대체신학이라고 폄하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말씀과 예언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혈통적, 국가적 유대인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출현과 사역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 초대교회가 새로이 조직되기 시작했는데 이들 구성원들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열매 맺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사도 바울은 그들을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로 보고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롬 2:28,29). 만일 메시아닉 쥬의 주장대로 교회의 자리에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대체신학이라 한다면 대체신학의 창시자는 바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될 것이다.
메시아닉 쥬는 또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에 연관 지어 설명하는데, 이것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이다. 성경의 예언을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역사적(문자적) 해석이요, 둘째는 묵시적(상징적) 예언 해석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바벨론 포로 70년, 애굽의 노예 400년 이런 예언들은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고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있는 대부분의 예언들은 묵시적(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다니엘서 내에서도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 등은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문맥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이냐 묵시적이냐를 구분 짓는 것은 예언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된다.
에스겔 37장 마른 뼈의 환상도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는 문맥 자체가 당시 실제적 사건에 대한 예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당시의 북방 이스라엘은 이미 100년 전에 사라졌으며 남방 유다의 멸망은 신속히 다가오는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마른 뼈들에 대한 이상은 소망 없어 보이는 유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만 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듯이,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번영할 때 배우기를 등한히 했던 하나님의 교훈을 역경 가운데서 배우도록 허락하셨음을 선포하는 예언이었다. 이것을 저 멀리 2500여 년이 지난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소선지서 등 모든 “회복” 예언은 1948년 실제 이스라엘의 독립 예언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누가 이스라엘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진 이후에는 더는 선택된 민족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 교회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빛 곧 진리를 전수하기 위하여 사용하실 한 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영적인 이스라엘로 택하여 사용하고 계신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제자들은 제일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에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절했고, 그 결과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전파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배반하여 나간 한 민족, 수천 년 동안이나 진리를 떠나 세속적으로 살아온 민족, 그것도 그들의 혈통이 다 섞이어 혼합된 사람들을, 단지 과거에 한 번 선택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시 선택된 민족이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이지도 않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98%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신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갑자기 변화시키시어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와 변론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존중하므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하지 않으시고 충분한 빛을 주신 후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지난 2000여 년 동안 핍박을 받으며 진리를 유지해온 교회를 제쳐 놓고 갑자기 유대인들을 다시 등장시켜서 그들을 통하여 마지막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내려진다는 것은 참 교회, 참 예언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려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적이다. 그 조건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바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6,7).
유대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역했을 때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으며 포로로 잡혀갔다. 그때 에스겔과 예레미야 같은 여러 선지자가 예루살렘 황무지에 다시 꽃이 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예루살렘과 유대 나라의 회복을 예언하고 소망을 고취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회복을 1948년도의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루살렘의 회복은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느헤미야 때 성전을 재건축하는 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약속을 받은 자들의 배도와 반역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이 무조건 성취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고 합리적인 해석도 아니며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리라는 아모스의 예언이 있는데, 이 예언을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이 전파된 결과로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는 것으로 적용하였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며”(암 9:11).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 15:14~16).
사도 바울은 아모스의 말씀이 신약시대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옛날 육적 이스라엘에 주셨던 언약이 이제는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교회들에 주어진 것이다.

 

 

열매 맺는 백성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고전 10:18).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다른 편에서 본다면 영적으로 따라 난 이스라엘 백성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6).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영적인 이스라엘은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열매를 맺는 백성만이 영적인 이스라엘이다. 실제 유대인들도 순종치 않고 열매를 맺지 않았을 때 버림받았던 것처럼 그 조건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고 말씀하셨다.
무슨 열매인가? 성령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열매다. 우리는 참 하나님의 이스라엘,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증거와 결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거룩한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이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구원의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 맺는 참 이스라엘, 참 하나님의 백성, 참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성경 예언의 성취는 짐승의 표 환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환난에서 살아남는 자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라고 기록해 두고 있다. 선지자들과 그리스도는 헛된 의식에만 사로잡혀 형식적 종교의 나락으로 떨어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고, 사도들 역시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의 정신에 맞는 성품의 열매를 맺을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구원의 대주제가 마지막 때 짐승의 표 환난 시에도 적용이 된다. 이 마지막 때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성품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계시록은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사탄은 또다시 초대교회 때 그랬던 것처럼 기만을 펼치면서 믿음과 성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식들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속이고 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어떤 의식들과 행위 제사들을 통하여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는 경향들이 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성을 충동질하면서 그러한 의식과 행위들을 통하여 거짓 평안 가운데 우리를 잠들게 하려고 노력한다.
참된 변화와 거듭남을 통하여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생애가 아니면, 우리는 그러한 유혹과 헛된 가르침에 쉽게 마음을 열고 멸망의 다른 복음을 좇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오직 마음에 의로운 성품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으며 돌아다니는 이때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지 인간의 헛된 철학과 거짓 가르침인 다른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함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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